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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29. 2022

'적당하다'는 기준은 어디까지일까?

"너무 열심히 살아왔어. 이제부턴 적당히 일하고 쉬기도 해!" "적당히 좀 먹어! 그렇게 많이 먹으니 살이 찌잖아!" "운동도 적당히 해야지. 지나치게 하면 오히려 안 좋아!"


'적당하다'라는 단어가 적용되는 문구는 대부분 경계를 묻고 있다. 그것도 지나침을 경계하는 쪽으로 치우쳐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중용(中庸 ;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이 떳떳하며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상태)으로 '적당하다'를 표현하면 적절한 듯하다. 부족한 것에서 보충하는 적당함보다는 과함에서 덜어내는 적당함에 더 적절한 표현이다.


하지만 이 '적당함'의 기준만큼 애매하고 두리뭉실한 것도 없다. 그때그때 다르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추상명사이니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운동에 적당함을 적용해보자. 어떻게 운동하고 얼마나 운동해야 적당할 것인가? 30분 이상 운동해야 적당하다고 할 것인가? 1시간 이상해야 적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30분 동안 걷기만 해도 적당하다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숨이 차도록 뛰어야 적당한 것인지 기준점을 잡기가 모호하다. 사람의 신체 조건에 따라 운동 강도가 다를 테니 나이에 맞는 운동과 시간을 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것도 사람 개개인의 조건에 따라 다 다르니 기준을 잡을 수가 없다. 연령대에 따른 평균치를 내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적당할까? 이것 역시 참조만 될 뿐 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안된다. 운동을 함에 있어 적당한 운동은 내 몸의 컨디션과 신체 조건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운동의 적당함은 나만이 알 수 있다. 운동이라 하면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내 몸을 움직여서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다. 조깅을 한다고 하면 평소 달리던 거리를 매일 100m씩 더 달려보는 거다. 3-4일 더 뛰어보면 100m 더 달리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뛰는 거리를 더 늘리지 않고 같은 거리를 일주일 정도 계속 뛰어 적응기간을 갖는다. 그러고 나면 다리 근육과 심폐기능이 그 거리에 적응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 다음날 100m를 더 뛰어보는 거다.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의 적당함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나의 능력을 상향시켜 감당해 낼 수 있는 범위까지를 말한다. 내 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강도로 운동을 했다가는 반드시 무리가 온다. 근육통이 생기고 관절에도 문제가 온다. 


인체는 적당함이 절묘하게 조합된 움직이는 기계다. 어느 하나 과하거나 부족하면 이를 보충하고 덜어내기 위해 반드시 반응한다. 적당함은 균형이다. 운동을 하는 것도 균형을 찾기 위한 것이다. 내 신체 균형을 찾기 위한 것이고, 내 나이에 맞는 신체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적당함의 기준은 바로 내 몸의 균형이다. 바로 적당함과 균형은 생존의 필수요소다. 


인체에 있어 적당함은 엄밀하고 세밀한 기준으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생각하고 적당히 행동하는 게으름 때문에 혼동하고 있을 뿐이다. '적당하다'의 단어는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효율성의 차이가 극과 극을 보이는 극명한 대조를 품고 있다. '적당히'가 대충대충이 아니고 엄밀히 측정된 가치의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범위의 한계를 알고 있어야 한다. 내가 깨어있어야 한다. 적당하다를 숫자로 몸무게 몇 kg인지, 조깅 거리 몇 km인지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적당한 기준이 된다.


불금인 오늘 아침은 비가 내려 운동을 못 나갔다고 핑계를 대며 만족의 쓴웃음을 짓고 있지만 내일 아침은 맑을 테니 핑곗거리가 없다. 무조건 조깅화를 신고 밖을 달려보자.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수준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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