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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02. 2022

수도권 전철역 691개 중 내려본 역 개수는?

아침 출근길 전철안. 망우역에서 탑승한다. 월요일이어서 그런지 6시반 임에도 제법 사람이 북적인다. 다행히 다음 역이 환승역인 상봉역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리는 관계로 내 앞에 빈자리도 생긴다. 백팩을 앞으로 하고 자리에 앉는다. 휴대폰 속 이메일을 들여다보는데 접속상태가 고르지 못하다. 버퍼링이 잠시 걸린다. 메일을 확인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속도 지연감은 참지 못한다. 바로 닫아버린다.


그리고 눈을 들어 창밖을 본다. 경의 중앙선은 내가 환승하는 왕십리역까지 계속 바깥 풍경을 보여주어서 좋다. 그러다 문득 눈높이가 전철 노선도에 닿았다. 자리에 앉아 있으니 깨알같이 쓰인 전철역 이름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까만 점들로만 보인다. 여러 색깔로 표시된 노선의 선들만이 어지럽게 다가온다.


그러다 문득 저 많은 전철역 중에 내가 내려본 적이 있는 전철역이 몇 개나 을까 궁금해졌다. 매일 전철로 출퇴근하며 망우역과 환승하는 왕십리역이나 1호선 회기역 그리고 회사가 있는 시청역에서 내리는 일이 전부다. 다른 역들은 약속이 잡혀있을 때 약속 장소를 가는 가장 가까운 역을 이용하는 정도인데 대부분의 약속 장소들도 다들 모이기가 용이한 시내 중심일 경우가 많으니 내리는 전철역도 제한적이다.


전철 안의 노선도는 너무 멀어 휴대폰 속의 지하철 노선도를 펼쳐본다. 내가 내려봤던 지하철 이름을 대강 헤아려본다. (아침 출근길에 참 할 일도 없긴 했다. 휴대폰 이메일이 빨리 안 열린데 핑계를 대본다. ㅠㅠ) 많이 셀 것도 없다. 내가 매일 출퇴근할 때 타는 경의 중앙선의 경우 전철역이 무려 57개인데 이중 내가 내려본 역은 청량리역, 회기역, 중랑역, 구리역, 옥수역, 이촌역, 용산역, 효창공원 앞 역을 포함해 13개 역밖에 없다. 그중에서 대부분은 환승역이다. 매일 출퇴근하는 노선에서 내려봤던 전철역 숫자가 이럴지언데 다른 노선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전체 전철역 통틀어서 내가 내려봤던, 환승을 해봤던 역은 30개 역도 안된다.


서울시내 전철을 포함해 수도권 전철역 개수가 모두 691개다. 서울시내 지하철역 개수만 9개 노선에 326개다.


대학 올라오면서부터 시작된 서울생활로 40년 가까이 살고 있는데 매일 이용하는 전철조차 5%도 안 되는 전철역에 내려봤다는 거다. 이는 그만큼 서울을 모르고 수도권을 모른다는 반증이다. 안 다녀봤다는 거다.

코로나 제재가 풀렸네 하며 해외 어디를 갈까? 하다못해 제주라도 가야지라고 검색을 부지런히 하면서도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는 너무 무관심하고 들여다보지조차 않았다. 모든 전철역마다 사연이 있고 사람이 살고 나름대로의 맛집이 있고 볼거리들이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심지어 내가 사는 동네 전철역 다음 역인 양원역에도 단 한번 내린 적이 없다. 내린 적이 없으니 주변을 가본 적이 없다. 전철서 졸다가 지나쳐 내려볼 만도 한데 졸다가 두 정거장 더 가서 되돌아온 적은 있어도 한 정거장 더 가서 깨 본일이 없어서다. 차라리 망우역 전에 있는 역인 상봉역은 운동을 핑계 삼아서라도 내려서 걸어서 집에 가는 경우가 있는데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려 되돌아오는 일은 결코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건방졌던가? 내 주변도 모르면서 멀리 바다 건너를 동경했고 심지어 해외로까지 관심을 갖는척했으니 말이다. "같은 서울인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냐"라고?  아니다. 택도 없는 편견이다. 나는 서울 동쪽인 중랑구에 살고 있는 관계로 서울의 서쪽 끝인 금천구나 구로, 양천구 쪽은 가본 일조차 없다. 안 가봐서 모를 뿐이다. 가보면 얼마나 많은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많을 것인가 말이다.


참 너무 답답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았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전철이 시청역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내릴 준비를 하면서 다시 눈을 들어 전철 노선도를 쳐다본다. 가볼 만한 전철역들이 마구마구 눈에 들어온다. 주말이면 가야 할 곳이 넘쳐난다. 전철역이 691개나 되는데 아마 주말마다 평생 다녀봐도 다 못 갈 것 같다. 흐뭇하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한다. 젠장 괜히 전철노선도를 쳐다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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