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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18. 2022

종이신문을 봐야 하는 이유

뉴스와 정보를 접하는 채널을 구분하는 일이 무의미할 수 도 있다. 눈을 뜨기만 하면 접하게 되는 온갖 소리 및 보이는 것 자체가 사실, 정보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잠을 자는 동안에도 낮동안 입력되었던 정보를 재생해 저장하고 걸러내는 일을 하고 있으니, 산다는 것 자체가 정보에 노출되어 있고 그 정보를 취사선택해 삶의 원천으로 삼아 좀 더 생존 가능성을 높게 만드는 일의 연속이다.


그래서 집약된 정보를 제공하는 곳의 효율성을 활용하는 것이 뉴스를 제공하는 신문과 방송 같은 대중매체이다. 그중에서 종이 신문은 최근 10여 년 사이에 사양사업으로 퇴보를 거듭하다 이제는 거의 일부러 찾아야 겨우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길거리 가판대에서 일간신문 없어진 것을 눈치챈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전철에서 종이신문 읽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스포츠신문의 전성기인 90년대만 해도 하루에 1면 기사만 바꿔서 두 번씩 인쇄해서 가판대에 깔았고 무가 신문이 전철 안을 뒤덮었던 2000년대만 해도 전철 안에 종이신문만 수거하는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던 시절도 있었다. "아! 옛날이여"다.


사실 모바일로 뉴스와 정보가 들어오면서 도구가 바뀌었을 뿐이다. 종이에서 디지털로 말이다. 정보가 어디에 담기는가가 중요한 것보다 어떤 정보가 담기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중요한 정보라면 형태가 어떻게 되었든 찾아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이신문을 보는 것과 온라인으로 기사 검색을 하거나 포탈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뉴스를 보는 일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질적인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같은 기사라고 똑같은 기사가 아니다. 기사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같을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종이신문을 받아 들면 기사 하나를 넘어 종합적인 가치를 펼치는 일이다. 바로 신문 지면의 배열이 그 언론사에서 평가하는 우리나라 하루의 가중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신문지면 1면은 종합면이지만 정치기사가 대부분 머리기사로 다루어질 때가 많다.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의 관심도에서 정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큼을 보여주는 잣대다. 이렇게 지면 한 면의 배열을 보면 어떤 사건과 사안이 하루의 중요한 관심사였는지가 그대로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 하루의 종이 신문이 인쇄되기까지 언론사는 여러 단계의 검증과 검열, 윤색을 거친다. 해당 언론사의 전체 지성이 함께 움직인 결과물이다. 결국 지면 배열을 보면 해당 언론사의 사회관과 세상을 보는 시각을 알 수 있다. 이를 흔히 진보적 매체니 보수적 매체니 선을 그어 색깔을 씌우기도 하지만 말이다.


온라인 기사 검색으로 뉴스를 보면 놓치는 것이 바로 이 배열, 편집이다. 지면 1면의 배열은 오늘의 탑 기사와 중간기사, 사진 등 보통 5개 정도의 기사로 채워진다. 이 기사의 배열이 바로 그날 주요 뉴스의 비중을 보여준다.  하지만 모바일로 보이는 기사는 화면의 크기로 인해, 제한된 한 건의 기사만 볼 수 있다. 전체 배열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가중치가 배제된 정보의 날 것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해당 기사를 송출한 언론사의 지성이 합쳐져 있는 기사임에도 그 가치가 상실된 정보만 읽게 된다.


종이신문을 읽으면 나무를 봄과 동시에 숲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을 통한 기사 검색은 나무만 보게 된다. 종이신문을 봐야 하는 이유다. 물론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지면 구성과 유사한 화면 편집을 해서 지면과 비슷한 효과를 볼 수 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포탈에서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기사를 읽거나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단어 검색을 통해 기사를 접한다. 정보의 편협성이 계속 쌓여간다. 점점 내가 관심 갖는 분야의 기사만 보게 되고 보고 싶은 기사만 읽게 된다. 확증편향적 일방적 기사 검색에 의해 편향된 사람이 되어 감에도 편향되어 있는지조차 모른다. 편향성이 당연함으로 바뀌게 된다. 이 당연함은 차별을 낳고 편 가르기를 한다.


그래서 신문은 2~3개 정도를 같이 봐야 한다. 언론사마다 논조가 다른 편향된 기사의 방향을 가져갈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다양성에 대한 관점에서 당연한 것이다. 다만 읽는 사람이 편향되지 않도록 시선을 조절하는 경계가 필요하다. 종이신문에 애착을 갖고 있는 꼰대의 편애일지도 모르나 정보의 종합을 전하는 매체를 대하는 존경의 표시다. 구겨진 진실을 전하지 않는다고 하는 어느 매체의 활자가 글자로만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오늘은 5월 18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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