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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19. 2022

게으름과 열등감과 부끄러움이 세상을 바꿔왔다

"세상을 바꾸었다"는 표현에는 뭔가 위대한 것이 작동했을 것이라는 암시가 깔려있다. 세상을 바꿀 정도라는 것은 기존의 관점을 깨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거나 편리성을 주는 것이니 대단한 무언가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인과관계를 적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론적 시각이지 않을까? 세상을 바꾸었으니 위대해 보이는 것이지 위대했기 때문에 세상이 바뀐 것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세상은 역설적이게도 하찮은 것들에 의해서도 바뀌어 왔음을 눈치챌 수 있다. 인간들이 그렇게 혐오하는 현상들이 세상을 바꾸는 도구로 쓰인 것이다. 바로 게으름과 귀찮음, 열등감과 부끄러움이다.


게으름과 귀찮음으로 인해 탄생한 발명품들은 셀 수 도 없을 정도로 많다. 텔레비전 리모컨이 그렇고 페니실린, 샌드위치가 그렇다. 기존의 틀에 갇혀 생활하고 생각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불편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바꾸어야 할 필요성이 사라진다. 안 바꾸어도 생활하는데 지장 없고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편하다고 느끼게 되는 발상의 전환을 바로 게으름과 귀찮음이 자극을 한다. 하기 싫고 움직이기 싫은데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이다. 해결책은 의외의 순간에 불현듯 나온다. 본질과 벗어난 곳에 해답이 숨어 있었다. 이 숨어있는 해답의 열쇠 중에 게으름과 귀찮음이 한몫을 하는 것이다. 게으름은 본질을 한 발짝 떨어져 보게 하는 시선의 방향 전환으로 사용되어 창의적 사고를 자극하고 극복하게 하는 원천이 된다. 불편함을 개선하여 편리하게 만드는 발명의 본질과 닿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게으름이 세상을 바꾸는 발명품으로 환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늘어진 게으름은 체중만 늘릴 뿐이다.

열등감(inferiority complex)은 또 어떠한가? 자기를 남보다 못하거나 무가치하다고 낮추어 평가하는 마음의 열등감으로 인해 이를 감추고자 트렌드를 만들고 따라간다. 문화칼럼니스트인 김도훈 씨는 "세상의 트렌드는 쭈그린 마음의 촌놈들이 만드는 것"이라며 "서울이 아닌 지방 출신의 열등감을 감추려고 대화에 뉴욕과 파리를 등장시킨다"라고 한다. 물론 일방적 사견일 수 있으나 패션 트렌드의 한 축에 열등감 극복이라는 화두가 따라붙어 다니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김도훈 씨의 지적에는 극복이라는 본질이 감춰져 있다. 현상은 열등감이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안을 제시하고 새로운 패션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트렌드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부끄러움(shame)도 마찬가지다.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 자리하면 이를 떨쳐내기 위한 자기와의 투쟁이 치열하게 일어난다. 부정을 강요받고 할 수 없이 동조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고 양식과 상식에 어긋나는 문제를 어떻게든 덮고 넘어가야 하는 상황에 몰렸을 때의 부끄러움도 있다. 이런 부끄러움을 알고 극복해낼 때 역사가 다시 쓰였고 세상은 바뀌었다.


게으름과 열등감과 부끄러움은 넘어야 할 경계이자 산이었기에 기꺼이 맞닥트려 이겨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결과물들이 세상 밖으로 등장한다. 세상에는 어느 것 하나 허투(虛套)로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이유가 있다. 허점이라고 생각되었던 게으름과 열등감과 부끄러움을 다시 들여다보면 분명 나의 존재를 뛰어넘을 힘과 상상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어왔기에 개인의 존재도 또한 그렇게 바뀔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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