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May 24. 2022

인간에게 가장 불평등한 것은 지식이다

평등을 이야기하고 공정과 공평을 이야기하는데 어떤 것으로부터의 평등이며 공정이며 공평인가? 돈으로부터의 균등이고 기회로부터의 평등과 공정인가? 우리 사회가 평등과 공정과 균형을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큼 평등하지 않고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반증이다.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시스템으로 평등과 공정이 작동해야 불만이 최소화된다. 돈이 많든 적든, 관직에 있던 아니던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기본 룰이라는 인식이 공동체를 굴러가게 하는 힘이 되는데  평등하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갈등의 씨앗이 된다.


그런데 불평등의 최상급임에도 아무도 불평등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분야가 있다. 바로 지식이다. 지식(knowledge)에 대한 사전적 뜻은 차치하고 그저 '앎'이라고만 정의해보자. 지식에는 아는지 모르는지라는 극단의 상황만 존재한다. 지식에는 "대강 아는데 대충 모르는데"가 성립하지 않는다. 대강 아는 것은 모르는 것이며 대충 모르는 것은 전혀 모르는 것이다.


지식만큼 불평등한 분야가 없는데도 이 불평등을 지적하는 사람이 흔치 않다. 학교를 다니고 책을 읽는 모든 행위들이 지식을 쌓는 일인데 뭔 소리 하냐고? 문제는 그렇게 오랜 기간을 투자해 쌓아 온 지식이 허점 투성이고 구멍이 숭숭 뚫린 방패였다는 것이다. 지식의 플랫폼을 만들고 차곡차곡 쌓도록 학습되고 훈련된 것이 아니라 요점 정리된 지식만 받아들이게 시험을 치렀기에 시험용 지식만 갖고 있다. 시험용 지식의 문제점은 시험과 동시에 사라진다는데 있다. 응용만이 시험에 나오기에 응용은 항상 바뀐다. 문제를 비틀어 내고 정확히 알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는 영원히 비틀린 지식만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스파이럴 하게 꼬이는 지식은 계속 꼬일 뿐이다.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는 공부법으로는 지식에 한 발자국도 접근할 수 없다. 겉만 핥다 끝날뿐이다.

책을 한 권 읽는 것도 그렇다. 책을 고르면 책 두께가 얼마나 되나도 책 선택의 기준이 되어버린다. 두꺼우면 잡았다가도 놓는다. 인터넷을 뒤져 책 요약본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책의 엑기스를 찾았다고 여긴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언제 두꺼운 책을 읽고 있냐며 이렇게 책 내용을 요약해 놓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빨리빨리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자위한다. 그런데 이렇게 요약본 지식을 습득한 이후 며칠까지 그 지식이 머릿속에 남아 있을까? 아마 며칠이 아니라 요약본이 화면에서 사라지는 순간 같이 사라질 것이다. 바로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책에 담긴 스토리를 통해 지식이 전달되는 과정이 생략되었기에 기억의 흔적을 이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식은 투자한 시간에 비례한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얍삽한 술수는 통하지 않는다. 지식이 불평등한 이유다. 지식을 쌓는데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데 이 과정을 지속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포기하고 쉽게 지식을 얻는 방법을 찾다가 겉핥기만 한다. 지식은 적당히 알고 적당히 아는 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충 아는 것은 금방 들통난다. 


지식은 기억의 고리를 계속 만들어 내야 가능하다. 오감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지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 학습된 기억이 있어야 가능하다. 개척을 하고 탐험을 하듯이 새롭게 입력되는 정보는 가두어놓기가 엄청 힘들다. 기억의 연결고리가 없으면 정보는 지식으로 변환을 못하고 스쳐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지식의 옷걸이를 만드는 일, 지식의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각 분야마다 반드시 암기하고 머릿속에서 언제든 인출할 수 있는 기억으로 각인해 놓아야 하는 플랫폼들이 있다. 자연과학에서는 주기율표가 플랫폼이고 분자생물학에서는 해당 작용과 TCA 사이클이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이 머릿속에 있어야 그다음에 관련 지식을 접하게 될 때 하나씩 걸려들게 되고 그때서야 플랫폼이 점점 튼튼해진다. 이 플랫폼은 통용되는 언어가 따로 있다. 자연과학 플랫폼의 언어는 숫자와 분자식이다. 인문학의 통용 언어는 연대와 중요인물이다.


지식의 불평등은 하소연할 수가 없다. 내가 돈이 없는 것은 사회 시스템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고 서라도 변명을 할 수 있지만 지식이 없다는 것을 타고난 머리 나쁨으로 변명하기에는 너무 치졸하다. 원인은 단 한 가지. 내가 공부하지 않고 내가 게을렀기 때문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지금이라도 당장 지식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플랫폼을 찾는 일에 나서야 한다. 많이 알아야 불확실한 현재를 확실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좋아하는 기회는 평등해야 하고 과정은 공정해야 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수 있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