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Jun 02. 2022

"고향은 기억의 소환장"이다

내 고향은 강원도 원주다. 대학 올라오면서 떠났고 지금은 일가친척 하나 없는지라 사전적 의미의 고향으로밖에 자리하지 못하고 있다. 83년 떠났으니 어언 40년 가까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기를 보낸 곳이라 막연한 향수가 어느 순간 불쑥불쑥 가슴속을 밀고 올라올 때가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친구들이 사는 곳으로, 나의 고향은 내 가슴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래서 가끔, 정말 가끔은 치악산 능선이 맞닿은 하늘 끝선이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원주의 모습은 40년 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지금은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아니면 찾아가지도 못할 정도로 변했다. 내 고향집은 명륜동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4통 고지 끝자락이다. 한국전쟁 후 피난민들이 들어와 터전을 잡은 곳이다. 나의 부모님께서도 원래 고향은 봉평 대화였는데 한국전쟁 당시 단양으로 피난을 가셨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정착한 곳이 원주였다. 집 앞에 교동 국민학교가 생겼고  원주여고가 이사를 왔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의 주변 풍경이다. 동네 한편에 우물도 2개나 있을 정도였는데 상수도가 집집마다 들어오며 묻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변두리 주택가였는데 지금은 원주의 한 복판이 되었다.


 예전에 살던 고향집도 도로가 되어 버렸다. 고향집 마당에 서있던 커다란 은행나무도, 어머니가 담장 밑에 철마다 가꾸어 놓던 목련이며 달리아 꽃의 모습도 볼 수 없다. 남의 손에라도 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기억의 한 자락으로만 남아 아직도 매년 가슴에 꽃을 피우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원주에서 친구들의 연락이 올 때면 웬만하면 열일 제쳐두고 발길을 하게 된다. 대부분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의 소식이다. 나이가 세월의 겉옷을 입는 순간순간마다 소식의 유형이 달리 전해진다. 친구들의 결혼 소식에 달려가다가 어느 순간 부모들의 부고 소식이 차지하더니 이제는 자녀들의 결혼 소식으로 대체되고 있다. 아직은 부모님의 부고 소식이 더 많고 간간히 자녀들의 결혼 소식이 섞여가는 시간 속에 있다. 그러다 불쑥 동창 본인의 부고 문자를 받을 때가 있다. 가슴이 덜컹한다. 사고이거나 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달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게 가까운 이의 죽음과 대면하는 날이면 지나온 시간들을 강제로 반추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틀 전에도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의 부친상이라 저녁에 원주에 다녀왔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거의 3년 만에 부서 회식이 잡혀있는 날이었지만 양해를 구하고 원주로 내려갔다. 직장 동료들 회식이야 또 잡을 수 있지만 친구의 부친상은 평생 한번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빈소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20명도 넘게 자리하고 있다. 참 오랜 시간 끈끈히 우정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그렇게 내 고향 원주는 친구들의 좋은 소식과 슬픈 소식을 함께 나누는 만남의 장소이자 위로의 공간이다. 고향이라는 공간이 주는 추억보다는 친구들과 공감하는 기억의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더 큰 곳이다. 40여 년 전 친구들의 별명을 부르고 그 단어로 인하여 비엔나소시지 엮여 나오듯 기억들이 쏟아져 나온다. 과거를 불러 현재로 재해석하여 미화시키는 과정이 추억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오히려 위안으로 작동한다. '꺽돌이' '까실이' '색시' '오뎅' '양키' 등등, 별명과 곁들여진 에피소드들이 경건해야 할 빈소의 분위기임에도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런 추억을 되새기고 싶어 친구들 소식이 들릴 때마다 내려가게 되는 거 같다. 각자 사는 모습과 각자 사는 장소가 다르지만 고향에서 터전을 잡고 지켜온 친구들이 추억과 기억을 되살리는 영화 필름과 같아 다행이다. 언제든 다시 그 기억을 불러내 상영할 수 있는 원주라는 고향이 있어 더욱 정겹다.


이제 과거의 기억만을 되새기며 추억에 잠기는 시간을 넘어 우리들의 시간으로 다시 만들 결정적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직장을 다니던 친구들이 대부분 은퇴를 할 때임을 알고 있다. 그나마 아직도 직장에 다니고 있음을 감사해하고 있다. "은퇴하고 내려오라"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든든하다. 놀아줄 친구들이 넉넉하여 다행이다. 그렇게 고향은 친구들의 다독임과 소주 한잔의 든든함이 함께 섞여있는 곳이다. 참 좋다.

작가의 이전글 그 식당 음식을 먹으면 항상 속이 안좋다. 나만 그렇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