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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07. 2022

'아버지, 어머니' 부르기만 해도 가슴 먹먹하다

내 자식들은 미래의 그 어느 날, 나를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하다"는 생각이 들까? 아니 '가슴이 먹먹하다'는 단어조차 모를지 모른다. 그저 아련한 그 어떤 추억이라도 떠올리면 다행이 아닐까?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라는 뜻을 알고 가슴으로 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50-60세를 넘긴 세대일 것이다. 그나마 부모님께서 생존해 계시면 먹먹한 가슴을 뚫을 수 있는 기회라도 있겠지만 이미 부모님을 세상에서 떠나보낸 사람들의 먹먹함은 그 무게를 덜어낼 기회조차 없어 더 먹먹할 수 있다. 


가슴이 먹먹한 강도의 수준은 부모님의 고생의 강도와 비례할 터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일지라도 부모님의 고생의 정도에 따라 그 감정의 강도는 조금씩 비중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상흔을 넘어 격동의 60-70년대를 버텨내 오신 우리 부모님 세대의 삶은 그 자체가 고난의 가시밭이었을  것은 자명하다. 시대가 안겨준 혼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헤쳐 나온 것만으로도 가슴 먹먹한 일이다. 그 안에서 아이들을 장성하게 키워냈고 그 힘듬을 처진 어깨와 갈라진 손발로 버텨내셨다. 그럼에도 자식들 학교 보내 공부시키는 것이 본인들의 고생을 대물림하지 않는 길이라고 입술 깨물고 살아오셨다. 힘들다 내색하지 않으셨다. 고생을 이겨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셨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그랬다. 오직 자식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런 우리의 부모님 세대중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다. 세대가 교체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그 과정에 느끼게 되는 그 '먹먹함'은 고생과 힘듬과 어려움과 가난에 대한 상징의 현상이 감정의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아직 나는 아버지, 어머니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가슴 먹먹한 세대다. 나를 위해 희생하신 그 삶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는 "다음에 또 올게요!"라는 말은 거짓말이 될 수 있다. 내가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께서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집에 군불용 장작이 평소보다 많이 쌓이거나 장독대에 장 담근 항아리들이 평소보다 많아지면 그 집 어르신이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세상과 하직할 때를 본능적으로 알고 마지막 힘을 다해 가족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을 무엇 하나라도 챙겨주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라는 것이다. 그렇게 끝까지 남을 식구와 자식들을 위해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서 준비를 한다. 눈물겨운 본능이 아닐 수 없다.

고향에 부모님이 계시면 지금이라도 당장 전화를 드려보자. 뜬금없이 "왜 전화했어? 아침에 바쁠 텐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냐?"라고 핀잔 아닌 걱정을 쏟아내실지라도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일상이라도 묻고 목소리를 들어보자. 서로 목소리만 들어도 오늘 아침 건강상태가 어떤지 눈치챌 수 있고 오늘 아침 감정상태가 어떤지 확인할 수 있다. 먹먹함을 한 거플 벗겨낼 수 있다. 그 먹먹함은 자식으로서 영원히 덜어낼 수 없는 무게임을 잘 알지만 그래도 위안이라도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19로, 요양원이라도 가 계신 부모님들은 2년 가까이 자식 얼굴조차 못 본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생이별의 먹먹함은 자식보다 부모들에게 더 깊은 상처와 불안감을 심어주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제는 한번 더 찾아뵙고 한번 더 전화드리는 것밖에 해드릴 것이 없다. 안타까움이 먹먹함에 무게를 더한다. 그럼에도 이겨내야 할 무게다. 어쩌겠는가? 보면 안쓰럽고 안 보면 안타깝지만 자식들이 견뎌내야 할 무게 아니겠는가? 그 먹먹함의 근원을 이미 가슴에 묻은 사람도 있으니 무게가 무겁다 불평하지 마라. 지나고 나면 그 무게가 얼마나 가벼웠는지 낯 뜨거울 수가 있다. 부모님이 계시면 지금 이 시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여드리기만 해도 된다. 당신보다 나은 모습으로 살고 있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행복해하실 것이 틀림없다. 자랑스러워하실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한 세대가 가고 다시 먹먹함의 색깔은 옅어져 다음 세대로 전해질 것이다. 먹먹함이 뭔지도 모를 세대로 바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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