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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26. 2020

인공지능의 넘사벽

출근길,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는데 우연히 버튼이 눌렸는지 인공지능 '빅스비'모드가 화면에 뜹니다. 이 휴대폰을 처음 샀을 때는 신기해서 자주 사용하기도 했는데 1년 정도가 지나니 별로 사용하지 않고 있는 기능이 되어 버렸습니다. 좋고 훌륭한 기능이 내장되어 있음에도 사용하지 않으니 그저 고철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휴대폰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이 기능을 집어넣었을 때는 나름 온갖 편리성과 아이디어를 집대성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용하는 사람이 그 기능을 충분히 숙지하고 잘 활용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합니다. 소수의 창조자를 다수의 대중이 따라가는 것이 발전의 진보임에도 대부분의 경우는 일부의 소유물로 그치게 됩니다.


휴대폰에 내장되어 있는 온갖 기능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휴대폰을 오직 전화 걸고 받고 문자 보내고 받고 인터넷 연결된 정보 검색, 카톡이나 페이스북 보기, 일정 관리, 알람 기능 정도를 주로 사용하고 나머지 내비게이션과 같은 애플리케이션은 간혹 사용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100만 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하고 산 것임에도 10만 원어치의 기능만 쓰고 있는 것입니다. 휴대폰 가격이 100만 원 정도 한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를 발휘하기 때문일 텐데 말입니다. 내 휴대폰에 어떤 편리한 기능이 있는지, 어떤 편리한 애플리케이션이 있는지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 할 일입니다. 그래야 내 삶을 편리하게 해 주고 간편하게 해 줄 테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휴대폰 애플리케이션 아이콘을 하나 더 다운로드하였습니다. 자동차를 새로 산 덕분에 블루링크를 휴대폰에 깔고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의 창문이 열렸는지 상태를 알아볼 수 있고 시동을 걸고 끄는 원격제어도 합니다.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의 활용도 결국 인공지능의 확장입니다. 편리성의 증대입니다.

밤 12시만 되면 휴대폰이 묻습니다. 업데이트해야 되는 애플리케이션이 있는데 업데이트할 거냐고 말입니다. 무엇을 더 보태어 기능을 향상할 건지를 사용자가 일일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휴대폰이 스스로 알아서 해줍니다. 매장을 찾아가서 휴대폰을 들이밀고 "업데이트해주세요"라고 하지 않아도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자동으로 바꿔줍니다. 어느 날 아침에는 휴대폰 아이콘이 여러 개가 바뀌어 있는 걸 목도합니다. AI의 세계는 인간이 잠을 자는 시간에도 쉬지를 않습니다.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세상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휴대폰에 내장되어 있는 AI 비서라고 하는 '음성인식 스피커'는 아주 작은 현상에 불과합니다. 구글을 비롯해 테슬라, 삼성전자까지도 인공지능 시장에 뛰어들어 자율주행 자동차, 음성인식 번역기 등 인간의 행위를 대신할 기계들을 우리의 생활 속에 공유시키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능들이 추가되고 능력은 인간을 닮아갑니다.


이젠 숫자와 통계, 데이터를 활용한 게임 등에서는 인간이 AI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AI에게는 가장 쉽고, AI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인간에게는 가장 쉽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쉬운 걷고 뛰는 것이 AI 로봇에게는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인간이 걷고 뛰기까지는 지구 생명체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으로 치면 무려 지구 역사 46억 년 동안 걷고 뛰기 위해 진화해 왔습니다. AI는 이제 겨우 30여 년의 시간을 진화해왔으니 비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에는 그만큼 장구한 시간의 축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보스턴 다이내믹스'사에서는 두발로 인간보다 더 잘 뛰는 AI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AI는 진화의 시간을 가장 빨리 단축시키는 타임머신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jJ3FQX6fg0Q


우리는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자극들이 일상적으로 느껴지면 감각이 무뎌졌다고 합니다. 뇌과학적으로는 '공고화(concretization) 된다'라고 합니다. 에너지 효율화를 위해 반복되는 일에는 신경을 덜 쓰기 때문에 디폴트 모드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날씨에 대한 반응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잠깐 차가워진 기온으로 인해 집어넣으려던 외투를 다시 꺼내고 난방을 끈 실내에서는 바깥보다 춥다고 투덜대기도 합니다. 차이(difference)가 바로 감각을 깨우고 감각은 지각을 각성시킵니다.


자연의 작은 변화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바로 한치도 자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제 아무리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고 해도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이기에 그 자연을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지구의 세력권을 벗어난 우주에 있다고 해도 태양계라는 자연 속에 있는 것이며 태양계조차 우리 은하의 일부라는 자연에 속해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전지 만물 태생 자체가 자연이라는 것입니다. 유일하게 자연이 아닌 건, 인간이 상상력의 발로로 만들어낸 인공물들 뿐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만들어낸 건축물, 자동차, 교량 등도 인공물로 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건물의 외형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었다고 표현할 수 있으나 그것은 자연의 구성물을 일부 변형시킨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이며 인간이 만들어낸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인간 편의로 재가공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인공지능은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물질이 아니라 콘텐츠라는 것입니다. 볼 수 도, 잡을 수 도 없으나 존재하는 그런 것입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따사로운 햇살의 기운을 느끼고 차가움의 상쾌함을 경험하며 사랑에 들뜬 연인의 입맞춤을 기억하는 것은 인간이 갖은 특권입니다. 이 시간 이 순간 존재하기에 느끼고 받아들이고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사는 겁니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겁니다. AI가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자 경계가 바로 이 순간 산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그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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