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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29. 2022

합리적 의심이라는 착각의 오류

완도에서 실종되었던 일가족 3명의 행방이 어제저녁 완도군 신지도 송곡항 방파제 인근 수중에서 발견됐다. 실종자들이 차량 내에 있는지는 차량을 인양해서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문이 잠겨있다는 것으로 봐서는 안에 있을 확률이 크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의 실종신고가 된 것은 22일이니 사건 수사가 시작되고 일주일 만에 바닷속에 빠진 차량을 발견했다. 이 일주일 동안 온갖 신문방송에서는 완도 전역의 CCTV를 뒤지고 현지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하는 등 수사기관의 수사기술을 앞서갈 것처럼 경쟁적으로 사건을 알렸다. 그런데 사실 보도가 아니고 미스터리 추리물의 소설적 작화와 자극적 영상에 동원된 구성물이 대부분이 아니었나 의구심이 든다.


국내 언론들의 이 같은 보도 행태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뿌리 깊게 만연된 작태였음은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라 그런 보도를 접하면서도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로 지나치기 십상이고 무시하게 된다. 하지만 공개수사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언론에서 다루지 않아야 하는 경계의 선과 시간이 있다는 점을 언론들이 간과하고 있어 안타깝다.


그중에 하나가 사건을 추론하거나 가정을 하고 넘겨짚는 것이다. 학술적인 내용을 다루는 학문에 있어 가정과 추론은 실험과 검증을 통해 가정이 틀렸는지 맞았는지 확인을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지만 사건 사고를 가정하고 추론하는 과정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사건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무한대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가정을 하고 추론을 하여 맞춰나가서 맞아떨어질 확률도 있고 아닐 수 도 있다는 것이다. 맞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슬그머니 빠진다. 국내 언론들은 이 확률분포에서 맞는 쪽에 승부를 건다. 맞고 안 맞고는 가보고 끝나 봐야 알지만 일단 지르고 본다. 맞으면 기고만장해서 "거봐! 우리 보도가 정확히 맞추었잖아!"라며 자화자찬하고 나중에 틀렸음이 판명 나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발뺌을 한다. 아니 추측기사가 틀렸을 경우에는 바로 화제를 다른 주제로 끌고 가 국면전환을 하는데 주력한다.


기사는 추측을 하고 예상을 하고 가정을 한 사견을 전하는 방법이 아니다. 팩트만을 전달하고 그 판단과 평가는 독자가 하도록 하는 사실 전달 과정이다.


실종 차량이 발견되기 전인 어제 오후 3시경에 한 유력 언론사에서 송출한 기사를 보자 제목이 ["실종 유나 양 가족, 물속엔 없다" 완도 주민들 확신한 이유]이다. 완도 주민들을 인터뷰하면서 주민들의 의견을 기사화한 것이다. (관련기사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82666?fbclid=IwAR0UkJ7n3pGjnde4gfw-VQ9aYfd_Kld4BvWD6DVKR_GDB-VfAaa_QW9L4f4#home)

28일 오후, 일가족 실종사건에 대한 기사

이 기사가 나가고 5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방파제 인근 바닷속에서 차량이 발견됐다. 이 기사를 어찌할 것인가? 해당 언론사에서 기사를 삭제할까? 아직까지 온라인 검색이 되는 것을 보니 조치를 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이 기사가 뭐가 문제인데?"라고 반론을 펼칠지 모른다. "차량이 발견되기 전이라 어떠한 의견이나 추론이 가능한 시점 아닌가? 해당 주민들이 조류의 움직임에 대해 제일 잘 알 텐데 그들의 의견을 전한 기사가 무슨 문제인가?"라고 되물을 수 도 있다.


바로 이런 비전문가의 겉핥기 식 의견을 문자 화하고 기사화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완도에 오래 살았다는 것이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완도에 평생을 살면서 물살의 빠르기와 높낮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주민들이지만 사건 사고에 대해 추론적 결론이지만 내리게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전적으로 기사화한 언론사의 문제다.


보통 일반인들이 합리적 추론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틀렸다고 보면 맞다. 일반 상식과 관습을 총동원하여 구성하면 합리적인 의심이 되고 결론도 합리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일반인의 합리적 추론이 갖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어떤 정확한 판단과 결론을 요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의견을 묻는 것이다. 일반인도 누구나 의견을 내고 사건을 정의하고 예측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개인적인 사견으로 족한 것이다. 문자화 되고 영상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사건을 다루는 관계기관의 판단에까지 영향을 주게 해서는 안된다.


이를 잘 걸러 듣고 보고 판단하는 것도 독자들의 몫이라고? 에라 썩을 ~~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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