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을 통해 전해지는 감각을 브레인의 대뇌피질에 저장하고 이를 필요할 때 인출할 수 있는 것을 기억이라 한다. 이 기억의 소재로 활용되는 오감 중에 가장 근원적인 것이 시각과 청각이다. 미각과 후각도 기억이 절반이지만 시청각이 차지하는 비율이 월등하다. 특히 포유류로 오면서 시각 지배적 브레인의 작동은 브레인 감각영역의 대부분이 시각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발달해 있을 정도다.
이 모든 감각정보가 언어정보와 합쳐져야 비로소 기억으로 인출이 가능하다. 정보가 아무리 많이 저장되어 있어 봐야 정확한 인덱스가 붙은 정보를 인출할 수 있어야 기억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 인덱스가 바로 언어다. 감각에 의미를 붙여 개념을 만들고 정의를 내리는데 언어가 필수인 것이다. 그래서 동물은 감각의 지배를 받고 인간은 의미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언어가 곧 개념을 만들고 사고를 규정한다. 언어화하지 못하는 것은 기억되지 않는다.
그래서 언어로 표현되기 애매한 의성어와 의태어가 등장한다. 소리를 흉내 내고 움직임을 흉내 내는 소리를 만들어야 그 소리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의성어와 의태어는 소리를 '그렇다'라고 끼워 맞춘 것이다. 철저히 자의적이다. 언어권마다 의성어가 제각각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개가 짖는 소리는 누가 들어도 명명백백히 한 소리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 개는 '멍멍' 짖고 미국 개는 '바우바우' 짖는다. 개도 국적에 따라 짖는 소리가 다른가? 그렇지 않다. 듣는 사람이 속한 언어권에서 통용되는 소리로 듣는 것이다.
의성어는 신기하게도 일단 그렇다고 듣게 되면 배우고 익힌 소리로 들린다. 이러한 현상은 꼭 의성어뿐만이 아니다. tvN이라는 채널에서 토요일 저녁에 방송하는 '놀라운 토요일' 프로그램을 보면, 특정 노래를 틀어주고 그중 일부 구간의 가사를 패널들이 맞추게 하는데 정확히 가사를 알아듣는 경우가 흔치 않음을 볼 수 있다. 가사 중에 영어단어가 섞여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임에도 왜 정확히 가사를 못 맞출까? 바로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말하는 앞뒤 정황과 말의 문맥을 따져서 이해해야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게 된다. 바로 들리는 데로 듣는 것이 아니고 내가 듣고 싶은데로 듣는 현상이다.
이렇게 소리도 기억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사라져 가는 소리들이 있다. 자연 생태계가 붕괴되어 동물들이 사라져 가는 경우도 해당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사라져 가는 소리도 있다.
우리는 자동차 시동 거는 의성어를 '부릉부릉'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기 자동차는 시동 걸 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심지어 주행을 할 때도 아무 소리도 안 난다. 그래서 백색소음까지 의무적으로 장착하고 있을 정도다. 앞으로 내연기관 자동차가 사라지고 전기자동차만이 운행하는 시대가 오면 '부릉부릉'의 의성어는 사라진 고어가 될 것이 틀림없다. F1 자동차 엔진의 '부릉부릉' 하는 소리는 심장을 뛰게 한다. 그런 심장 울림을 전기자동차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사라져도 F1 경기는 추억의 경기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전화 걸려오는 소리의 의성어를 잊어버리고 있는 세대가 되었다. 온 집안 식구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기에 집에 있는 유선 전화기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예 유선 전화기를 없앤 집들도 상당히 많다. 이 유선 전화기가 울리는 벨소리의 의성어가 "따르릉~~ 따르릉"으로 통용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사라졌다. 설사 유선 전화기가 울린다고 해도 유명 클래식 곡이 흘러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휴대폰 속 전화벨 소리는 만인만색의 칼라링으로 채색되어 있다. "따르릉은 무슨 소리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일부러 전화벨 소리를 추억의 '따르릉'으로 설정해 놓아야 하는 시대다.
그렇게 들리는 소리조차 시대를 따라 생겼다 없어졌다를 반복한다. 새로운 현상을 개념화하여 단어를 명명하여 신조어를 만들어 '그 현상을 전달할 때는 그렇다'라고 규정짓고 통용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사라지는 단어 특히나 의성어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함께 변할 수밖에 없다. '부릉~부릉'이 사라지고 어떤 의성어가 향후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로 등극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참 미국 차는 시동 걸 때 어떤 소리를 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