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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08. 2022

전철 칸을 웃음바다로 만든 사람

전철로 출퇴근하면서 요즘은 별로 볼 수 없는 광경이 있다. 예전에는 물건 파는 사람도 간혹 보이곤 했는데 근래 들어서는 보이지 않는다. 나의 출근시간이 6시 반 시간대여서 조금 빨라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예전에는 간혹 물건을 팔거나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하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적은 종이를 돌리고 승객들의 동정심에 호소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아직도 전철안 풍경 중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 내가 최근에 마주치지 않았을 뿐.


그러다 오늘 아침 아주 재미있는 상황이 출근길 전철 안에서 벌어졌다.


6시 25분에 전철에 탑승을 했는데 승객이 제법 많다. 서있는 사람이 촘촘해서 지나가기 불편할 정도다. 나는 다행히 서있던 앞 좌석 승객이 내리는 관계로 자리바꿈을 했다. 그렇게 두 정거장을 지날 무렵, 전철 칸 끝 쪽에서 성경구절을 언급하며 기도하는 전도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온다. 전철 칸에서 전도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전철에서 전도를 하는 대부분의 개신교 사람들의 경우는 성경구절을 낭송하거나 찬송가를 읊조리며 천천히 전철 칸을 이동한다. 전철 칸 승객들도 종교를 믿건 안 믿건 그런 경우는 그런가 보다 하는 참아낸다. 어차피 지나갈 거니까.


그런데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 목사를 자처하는 이 목청 큰 전도사께서는 목소리의 에너지가 장난이 아니다.  어디 개척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분이신지 기독교를 등에 업은 사이비 목사 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전철 칸 끝에 탑승을 하셨는데 내가 앉아있는 중간 자리까지 목소리가 힘차게 전달된다. 보통은 간단한 기도 문구를 읊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라고 하는데 이 분은 전철역 한 정거장을 지나도록 기도빨을 놓지 않으신다. 조용했던 전철에  그분의 목소리와 찬송가 소리가 장악하기에 이른다. 여기저기 조용히 하라는 원성의 목소리가 뒤섞이는 와중에 젊은 처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기도 한번 했으면 됐지. 그만하세요. 민폐 끼치지 말고요"

전도하는 목사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오늘 복 받으신 겁니다" "모두들 눈 감으시고 오늘도 행복하다고 하세요. 아셨죠. 행복하다고 하면 행복해집니다. 아멘" "아멘 하세요. 아멘 모르세요?"


애당초 승객들과 대화를 통한 선교가 목적이 아니신 분이라 타인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렇게 다른 승객들과도 목청 높이는 실랑이가 벌어질 때 목사의 결정적인 실수의 한마디가 전철 안을 온통 폭소로 만들었다. 목사 왈 "제 말이 시끄러우면 내리세요!"

이 말에 옆에 있던 젊은 처자가 "아니 시끄럽게 하는 당신이 내려야지 승객들이 왜 내려요!"라고 쏘아붙인다. 전철이 온통 웃음으로 뒤덮였다. 


상황이 완전히 코미디로 바뀌었다. 이 분위기가 머쓱했던지 목사가 다음 칸으로 간다며 전철 칸을 옮겨갔다. 


막무가내 정도의 철판을 얼굴에 깔아야 전철에서 전도할 수 있겠지만 오늘 아침 전철안 전도의 현장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개신교가 점점 사회로부터 멀어져 가는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종교도 대중의 눈높이를 못맞추면 갈아타게 된다. 나도 질풍노도의 시절, 교회 오빠를 했던 적이 있다. 언젠가 다시 회개하고 돌아갈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글쎄올시다'다. 일개 목사의 전도 행태로 믿음의 질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교회에 다니시는 분께서는 너무 노하시지 마라. 나도 집안에 절실히 믿는 가족이 있고 절친 중에 신부님도 계시고 목사님도 계시다. 내가 아는 개신교 종교인은 너무도 착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항상 그렇듯이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물을 흐린다. 일부 비상식적인 사람들이 말이다.


그래도 아침 출근길, 주먹다짐 안 하고 전철 안을 웃음바다로 만들어주신 그 목사님께 감사드린다. 웃음을 주셔서 정말 고맙다. 아니 목사님 말을 막아버린 젊은 처자에게 고마움을 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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