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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13. 2022

난 아직도 덧셈할 때 손가락을 꼽는다

나는 아직도 개수가 열 자리를 넘는 덧셈을 할 때는 손가락을 꼽거나 종이에 써야 한다. 수학을 떠나 산수조차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덧셈조차 이러니 뺄셈이나 나누기는 말하면 뭐하랴. 그나마 구구단의 위력으로 곱하기는 쉽게 할 수 있지만 두 단위가 되면 머릿속으로는 절대 계산 불가능하다. 암산이 안된다. 반드시 종이에 써야 결과물을 알 수 있다. 휴대폰 속 계산기가 머릿속 계산 기능을 무디게 만든 것일까? 아니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숫자를 계산하는 수학적 머리는 없는 게 틀림없다. 그래서 아직까지 열 손가락은 간단히 산수적 계산을 하는 데 있어 나에게 유용한 도구로 활용된다. 나는 도구적 인간이다. 손가락에 숫자를 부여하여 시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직관과 논리, 계산적 사고보다는 시각 지배적 사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찍이 수포자였다. 뼛속까지 문과였다. 아니 숫자가 머리에 안 들어오니 문과 인척 최면을 걸고 문과 인척, 문과를 좋아하는 척했기에 결국 문과가 된 셈이다. 외국어를 공부해보면 안다. 외국어조차 문장이 빨리빨리 외워지거나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다. 이과는 완전히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문과도 아니었던 셈이다. 그저 그런 평범한 범위에서도 한참 뒤쪽, 그나마 문과적 경계에 좀 더 가까운 곳에 나의 학습 능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진실을 말하면 창피하지만 진솔해지면 자유로워진다"


자기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자녀들의 능력을 예의 주시하여 관찰하고 애들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더 잘하도록 독려하고 칭찬하고 지원해주는 일이 부모들이 할 일이다. 지금 50-60대 세 대 때는 학교 선생님들이 제자들의 능력을 간파하여 키워주는 역할을 했다. 50-60대 세대만 해도 부모님들께서 우리들을 재능을 살펴볼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바쁜데 아이들 관찰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나? 그저 아이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셨을 시절이었다. 그렇게 우리 세대들은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지는조차 모르고 등 떠밀려 대학을 가고 얼떨결에 졸업을 하고 대충 취업을 하며 살아왔다. 운이 좋은 세대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살았음에도 아직도 잘 버티고 있으니 복 받은 세대임에 분명하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찍은 남쪽 고리 성운(Southern Ring Nebula).

사실 인간 능력을 향상하는 데는 반복된 훈련밖에 없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조차 반복 학습된 결과물이다. 생존 욕망 자체도 반복의 욕구일 뿐이며 자전거를 안 넘어지고 타는 일도 넘어지고 또 넘어지다 일어나는 일을 반복한 결과다. 일상생활의 모든 행위를 돌아봐도 반복해서 하지 않는 일은 하나도 없다. 하루아침에 유명한 운동선수가 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천재라는 사람도 하루아침에 새로운 발명을 하고 이론을 만들어내는가? 반복된 훈련을 통해 최고로 거듭날 뿐이다.


나는 아직 덧셈을 손가락을 꼽아서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 공식을 쓸 줄 알고 좌변과 우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정도는 된다. 그렇다고 방정식을 전개하여 도출하지는 못한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아인슈타인 중력장 방정식 최종 공식에는 숫자가 세 개 밖에 안 나온다. 

중력장 방정식

텐서와 편미분방정식이 숨어 있지만 산수로 계산되는 게 아니라는 소리다. 손가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산수가 기본이 되어야 수학을 이해한다고?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거꾸로 최고의 이론을 먼저 공부하면 아랫것들은 자연히 따라오게 되어 있다. 인수분해도 헷갈리고 스칼라와 벡타도 모르고 텐서는 더욱더 모르는데 이게 가능한 거냐고? 그건 쫌 그렇다. 내가 뭘 모르는지 알아야 집중된 훈련을 통해 그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하지만 수학적 개념이 부족한 것과 숫자적 계산이 안 되는 것을 같은 것으로 혼동하면 안 된다. 수학적 개념에는 직관과 논리적 사고가 필요하다. 숫자적 증가와 감소를 알아채는 계산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숫자 세는데 손가락 쓰는 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더라만 ㅠㅠ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는 "수학은 설명되지 않는 패턴을 수식을 통해 설명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산수는 단순히 물질에 숫자라는 도형을 부여해 세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상을 존재로 규정하고 이해하기 전에는 셀 수가 없다. 숫자를 세는 일은 단순함으로 귀결되지만 세상의 존재에 대상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하나 둘 셋 넷 --- 셀 수 있다는 것은 존재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산수는 단순하지만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상상력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도형이다. 존재를 규정하는 도형인 숫자는 그래서 단순하지만 참 오묘하다.


덧셈을 할 때 손가락을 사용한다고 너무 주눅 들지 말자. 나만 손가락 계산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손가락을 세는 위대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위안을 삼자. 존재의 수를 세는 엄청난 행위를 손가락이라는 몸의 부속지를 통해서 병행하고 있다. 손가락을 많이 사용해서 아마 다른 능력과 기능이 뛰어날 텐데 잘 찾아보자. 평생 손가락을 펼쳤다 구부렸다를 훈련했을 테니 미쳐 발견하지 못한 재능이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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