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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14. 2022

남들이 하는거 따라 해도 안 망하는 희한한 장사가 있다

직업상 듣고 싶지 않은 콘퍼런스나 포럼에 의무적으로 가서 앉아 있을 때가 많다. 그냥 행사를 주관하고 진행하는 언론사 사람들에게 눈도장 찍으러 간다. 행사장에 가서 빈소리나마 "성황입니다" "대박이군요. 요즘 트렌드와 딱 맞는 주제를 잘 고르셨습니다"라고 하고 악수 한번 하고 강연장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입구에서 서성 대다가 도망치듯 돌아온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래도 콘퍼런스홀에 들어갔는데 청중이 없으면 그냥 발걸음을 되돌리기가 머쓱해서 자리에 앉아 자리가 차기를 기다려주기도 한다. 뭐하는 짓인지.


물론 유명 연사들도 초청되어 세계적인 트렌드와 최신 이론과 현황들을 전하고 어젠다 세트와 패러다임을 이끄는 굵직굵직한 콘퍼런스와 포럼도 있다. '매경 지식포럼'과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같은 것들이다. 그런 포럼들은 세션을 찾아다니며 듣고 싶은 경우도 있어 국내 컨벤션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다. 

 

하지만 몇몇 주요 콘퍼런스를 제외하고는 비슷한 주제의 행사들이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열린다. 몇 년 전에는 기업들의 사회공헌 관련 포럼들이 줄줄이 개최되더니 최근에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관련 콘퍼런스와 포럼들이 주를 이룬다. 포럼의 계절인 봄가을에는 같은 주제로 하루에 다른 업체에서 오전 오후로 포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자는 건지.


콘퍼런스와 포럼을 돈벌이로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물론 돈 벌려고 행사를 하는 게 맞다. 콘퍼런스와 포럼을 하지 않는 언론사가 거의 없을 정도다. 돈이 된다는 거다. 물론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서 가능한 일이긴 하다. 포럼 행사가 돈벌이로 전락한 데는 이유가 있다. 행사하는데 연사 초청비를 제외하면 큰돈 안 든다는 거다. 전시회나 공연처럼 화려하게 꾸미거나 잔머리 안 써도 된다. 패널 숫자에 맞게 의자 몇 개 가져다 놓으면 행사 준비 끝이다. 돈 벌기 참 쉽다. 어느 누가 이 미끼를 물지 않으랴!


함정이다. 그것도 늪이다. 늪 위에서 달콤한 꿀이 떨어지고 있으니 그것이 늪인지조차 모른다. 비극이다.

이 비극은 포럼의 품질로 드러난다. 초청연사로 전문가들을 모셨는데 들을 게 없다. 근래 3-4년 사이에 붐을 이루고 있는 ESG 포럼만 봐도 그렇다. 이 주제에 새로운 학설이 나오거나 트렌드가 나오거나 사례가 나올 수 없다. 그렇고 그런 발표, 지난해 했던 거와 바뀌지 않은 내용, 표준화되지 않아 제각각인 평가기준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포럼 진행의 수준을 어느 정도의 경계로 맞추느냐도 대단히 중요한 일임을 진행하는 업체에서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하향 평준화되는 쪽으로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는 게 문제다.


어떠한 포럼 행사든 인사이트가 있어야 한다. 주제에 맞게  일관되고 관통하는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포럼 내내 끌고 가서 결과물을 제시하고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현상을 보여주려고 기획했으면 그 실상을 체계적으로 잘 보여주도록 행사 진행을 해야 한다. 포럼은 전시회와 같이 그저 보여주는 행사가 아니다. 앞선 자들의 지식과 지혜를 선보이고 청중들과 나누는 자리이다. 물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보여줘야 한다.


포럼을 준비하면서 어느 업체가 이런 고민을 안 할쏘냐만은 이것이 시간에 쫓기고 연사 선정이 쉽지 않고 비용에 허덕이다 보면 하나씩 제외되어 그렇고 그런 보편화된 행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포럼을 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떤 어젠다 세팅을 할 것인지, 우리 사회와 기업에 어떤 패러다임을 던지고 발전된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쉽지 않다. 쉽지 않기에 고민에 고민을 해야 한다. 돈벌이된다고, 남들이 한다고 나도 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언론사 행사는 예외이긴 하지만 말이다.


지행상방 분복하비(志行上方 分福下比 ; 뜻과 행동은 나보다 나은 사람과 견주고 분수와 복은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라)라 했다. 콘퍼런스나 포럼은 우리 사회와 기업의 정신적 방향을 선도하는 안내견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시간으로, 참여자들의 집단지성과 소통으로 공감을 하는 그런 장소가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분수와 복을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해서 열받아 있고 지성과 행동은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해 우월하다고 자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시선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하는 것은 개인이나 기업이나 사회나 모두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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