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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15. 2022

변비에 대한 고찰

산다는 것은 "잘 먹고 잘 싸는 일"로 정의 내릴 수 도 있다. '잘 먹는다'는 것은 가리지 않고 먹고 싶은 것 적당히 먹어 탈없이 만족하는 수준의 '잘'이다. 반면 '잘 싼다'는 것은 '속에 부대낌 없이 잘 먹어 변비나 설사 없이 쾌변을 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살면서 "잘 먹고 잘 싸는 일은' 생존의 기본 행위이지만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않듯이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고 만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먹으면 찌꺼기를 배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데 뭐 억지로 의미를 갖다 붙일 필요까지 있을까?"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먹는 것은 그렇다고 치고 싸는 것에 고통(?)을 받아 본 사람은 싸는 행위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몸으로 메일 체험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의 주제가 너무 형이하학적이고 더러운가? 그래도 '똥 싸는 일에 대한 고찰'을 한번 해보자.


나는 평생 똥 싸는 일에 고민해본 일이 거의 없다. 설사든 변비든 말이다. 장이 튼튼하고 장내 세균도 잘 조화롭게 공생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른다. 하지만 살면서 평생 설사나 변비로 인해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어야 인간적이지 않은가?


오늘 아침 내 평생 똥 싸는 일에 에피소드 하나를 추가하는 일이 벌어졌다. 변비 때문이다.


나는 평생 매일 아침 일어남과 동시에  변기에 앉는 루틴을 유지해 왔다. 직장인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아침 기상에서 출근길 집을 나서기까지의 한정된 시간은 1분 단위로 쪼개진다. 양치질 3분, 면도 2분, 그리고 응가 10분, 샤워 20분, 헤어 드라이 3분, 애프터 쉐이브 화장품 바르기 1분, 옷 입기 5분, 약 챙겨 먹기 1분 등등 일어나서 현관문을 나서기 전까지 40분의 시간은 이렇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간다. 어느 한 부분에서 시간이 지체되면 이어서 해야 하는 다음 행위에 시간적 제한을 주게 되고 그러면 출근 준비 루틴이 깨져버려 허둥지둥하게 된다.


오늘 아침도 이 분 단위의 출근 준비를 하면서 양치질과 면도를 끝내고 변기에 앉았는데 전혀 배설이 안된다. 대장의 연동운동으로 배변의 욕구는 강한데 밀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순간 당황했다. 내 평생 배변을 못해 끙끙대 본 경험은 아무리 과거를 회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제 아침도 아무 일 없이 잘 쌌는데 말이다. 5분여를 끙끙거려도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다. 변기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짐에도 전혀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니 초조해진다. 그렇다고 그냥 일어나기에도 찝찝하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순간이 지나간다. 

직장 출근시간에 평생을 목매 온 입장에서 결단을 한다. 그냥 변기에서 일어나기로 ㅠㅠ.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샤워를 끝내고 체중계에 몸을 실었다. 역시나 70.7kg의 숫자를 보인다. 이 놈의 똥 무게가 체중계 숫자를 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괜히 열받는다. 옷을 입으면서 묵직한 엉덩이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마스크를 챙겨 쓰고 집을 나선다.


전철역까지 오는 걸음걸이가 가볍지가 않다. 아 그 찝찝한 기분 ㅠ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철역에 도착하니 전철이 4 정거장이나 뒤에 있다는 안내표시판이 보인다. 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리기보다는 막간의 시간을 이용하여 전철역 화장실에 들러보기로 한다. 속이 거북하거나 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일단 변기에 앉아본다. 장의 연동운동을 돕기 위해 두 손으로 양옆 갈비뼈 사이도 눌러 복부 근육의 수축을 도와준다. (배변 시 갈비뼈 사이를 눌러주면 더 쉽게 똥을 쌀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경험적으로 체득한 비법이다. 오늘 별걸 다 공개한다. 제길 ㅠㅠ) 그리고 기를 모아 아랫배에 힘을 보탠다. 천만다행으로 단단히 막고 있던 녀석을 밀어냈다. 아랫배가 홀쭉해지는 느낌이다. 혹시 변기가 막힐까 재빨리 물을 내렸다.


똥 싼다는 일이 이렇게 개운한 일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어제 무엇을 먹었기에 오늘 아침 문제의 발단이 되었는지를 곰곰이 반추해 본다. 특별히 먹는 것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지금 거의 한 달째 입으로 들어오는 모든 음식과 음료를 적어 놓는 일지를 쓰고 있는 와중인데 어제도 아침은 안 먹었고 점심은 평양냉면, 저녁은 부대찌개를 먹은 수준이라 특별히 변비와 관련된 음식을 먹은 것 같지는 않다. 장의 연동운동에 무언가 문제가 있을 듯한데 오늘내일 상태를 지켜보기로 한다. 혹시나 치질?? 을 의심하기도 해 보지만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는 못하겠다. 3주 전에 건강 검진할 때 내시경 검사를 하느라 위와 장을 싹 다 비우기도 했기에 더욱 오늘 아침의 변비 현상에 궁금증이 덧씌워진다.


똥 싸는 생리현상에 대해 너무 적나라하게 들여다본듯하여 냄새까지 전해져 오는 것은 아닌지 송구하다. 하지만 먹고 마시고 비우는 단순할 것 같은 행위들이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똥 잘 싸는 일이 하루의 기분을 좌우할 줄은 미처 몰랐다. 변기 물을 타고 내려간 똥덩어리에 경배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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