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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18. 2022

말이나 글로 드러내지 못하면 모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정보를 모으고 있다. 정보를 모으는 것이 일상이다. 이 모은 정보가 지식이 되고 쌓이면 지혜가 되어 나의 아우라로 드러난다. 아우라로 정보가 환생하기까지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임계치가 있어서 그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모은 정보의 수준을 가늠할 수 없다. 모아진 정보가 술도가에서 술 익듯이 통합되고 융합되어 새로운 지식으로 거듭나 맑은 청주가 되어 나오기 전까지는 탁한 막걸리일 뿐이다. 설익은 정보는 탁함에도 불구하고 나름 맛도 있고 운치도 있기에 쉽게 안주하고 자만하기 쉽다. 조금 더 모으고 조금 더 정제하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함에도 참고 견디기가 쉽지 않다. 조금 더 통합하는 과정을 거치면 맑은 물이 되고 도수도 센 청주의 모습으로 탈피를 하는데,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 세상을 알지 못한다.


플라스틱 막걸리 통에 담겨 소비되고 마는 길을 간다. 도자기에 담기고 유리병에 담겨 장식장에도 전시되는 길이 있음에도 가려고 하지 않는다. 시큼털털한 맛도 맛이긴 하다. 사람마다 입맛이 제각각이듯이 정보를 담고 저장하고 불러내는 방법도 가지가지일 수밖에 없긴 하다.


상태가 바뀌는 임계치(critical value)를 경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리적으로 현상이 다르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경계의 값이기에 도달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바로 물이 얼음이 되는 순간의 '0'도와 같다. 0.1도의 상태에서도 물이다. 0.1의 순간을 지나야 얼음으로 바뀐다.


정보의 임계치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통섭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임계치를 넘기 위한 에너지의 축적이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접한다고 다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일단 내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줄 알아야 한다. 인터넷과 포탈에 다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너무 많아서 내가 진짜로 찾는 정보는 안 보이는 경우가 더 많다. 정보를 수집하는 경우도 요령과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어느 길목을 지키고 있어야 정보를 낚아챌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각 분야마다 게이트키퍼들이 있다. 그들의 지식창고 옆에 지켜 서서 정보들이 들고나는 현장을 보고 배워야 한다. 선행자의 행동을 지켜보고 따라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다고 맹종을 하면 안 된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길을 가고 있기에 그 사람이 걸어온 행적이 나의 정보 취합에 도움이 되는 부분만을 선별 취합해야 한다. 강을 건넜으면 뗏목은 버리는 냉철함이 필요하다.

어떤 정보를 취합할 것인지도 알아야 한다. 지식에는 반드시 분야별로 '결정적 지식'이 있다. 요즘같이 기온 급상승의 원인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현상이라면 이 현상이 인간의 화석 에너지 과소비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휴먼팩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이 결정적 근거로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 양을 나타낸 킬링 곡선(Keeling Curve)을 알아야 하며 이를 통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산업혁명 이전 280ppm이었던 것이 현재 420ppm을 넘어서고 있음을 알아야 하고 이로 인해 대기온도 상승으로 지구 평균 온도도 산업혁명 이후 1.1도나 상승했음을 알아야 한다. 알아야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함을 이해하고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행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정적 지식은 그런 것이다.


정보와 지식은 쌓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만 이 축적된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인출해내는 못하면 쌓아놓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인출하는데도 훈련이 필요하다. 체계적으로 정보를 꺼내는 방법을 훈련하지 않으면 파편화된 정보일 뿐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 정보를 인출한다는 행위는 쌓인 정보를 통섭하고 통합하여 새로운 창의성으로 꺼내놓는 일이다. 알고 있는 정보를 꺼내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 알고 있으면 뭐하나? 써먹지를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말이나 글로 알고 있는 걸 드러내지 못하면 모르고 있는 것과 같다. 


쌓는 것만큼 드러내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쌓는 일보다 드러내는 일이 더 어려울 수 있다. 어설프게 쌓은 정보와 지식은 사상누각이 되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 언제든지 꺼내쓸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반복된 훈련을 통해 각인되어야 가능하다. 내가 완벽하게 알지 못하고 정리되지 못하면 입 밖으로 꺼내놓을 수 없고 글로 표현할 수 없다. 대충 아는 어설픔은 금방 탄로 난다. 그래서 결정적 지식을 반복해서 익히는 훈련을 통해 언제든 꺼내놓고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결정적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주변 지식들이 달라붙을 수 있다. 어설픔과 막막함을 벗어던지고 맑고 밝은 세상을 보는 일은 평생 끊임없이 지식을 추구하고 쌓고 갈고 닦아야 한다. 지난한 일일 수도 있고 즐겁고 행복한 일일 수도 있다. 알게 되면 아는 만큼 보이게 되니 아는 영역을 넓혀 나가는 일은 흥미진진한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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