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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20. 2022

제발 많이 먹는 먹방 영상 좀 안 볼 수 있었으면

한 20년은 넘은 듯하다. KBS 2 TV에서 개그콘서트가 폭발적 인기를 누릴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당시 모 매체의 언론인과 저녁식사 자리에서 방송 소재의 주류가 어떻게 바뀌어 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먹방을 선도하는 종합편성 방송도 등장하기 전이고 유튜브가 판을 칠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그 언론인 왈 "방송 소재는 의식주의 형태를 반영해 가는데 입고 먹고 자는 것을 다루는데 시대적 흐름이 있다. 지금은 패션 등 입는 것에 많은 방송시간이 할애되는데 곧 먹는 쪽 소재로 옮겨갈 것이고 더 나중에는 자는 집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견이었다. 당시에는 한 귀로 흘려들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나니 그 언론인의 인사이트가 20년 앞을 내다본 듯하다. 사실 그 언론인은 스웨덴의 이케아가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을 알았고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그 추세를 따라갈 것을 감지했던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도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는 사회적 현상중 하나다. 어떤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사회의 분위기를 주도하는지를 보면 그 사회의 수준을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다.


지금 방송과 동영상의 세계는 먹방의 세계임에 틀림없고 간간이 부동산 소개 프로그램 및 전원주택 같은 집을 소개하는 코너와 아예 집을 짓는 전 과정을 보여주는 채널도 있다. 프로그램 소재의 이동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는 것은 아니다. 관심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서서히 옮겨가 더 많은 방송시간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소재의 이동이 더 빨리 일어났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다. 요즘 먹방 방송이나 인기 있다는 유튜브 채널을 보면 이건 먹는 것을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 "게걸스럽게 처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혐오 방송"이라 할 수 있다. 맛집을 소개하고 맛있는 메뉴를 알려주는 것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나중에 좋은 사람들과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는 즐거움을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그 수준을 넘어 음식을 입에 욱여넣고 많이 먹는 것을 자랑하는 동영상은 '세상에 이런 일이'정도의 프로그램에 소개될 영상이지 정상적인 방송에서 방영할 수준이 아니다. 그건 혐오를 넘어 자학이고 학대다.


맛있게 많이 먹는 걸 보는 게 어떠냐고? 대리 만족할 수 있지 않냐고? 과연 그럴까?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계속 세 끼 이상 먹으면 질리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인간의 미각 시스템 구조다. 미각과 후각의 감각은 화학적 감지를 통해 인지한다. 맛 분자와 냄새 분자가 혀와 코의 감각세포에 닿아서 화학적 분해가 되어야 맛과 냄새로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화학적 반응이라 맛 분자가 분해되면 금방 잊히고 맛의 구분이 안된다. 그래서 소믈리에가 와인을 감별할 때 계속 물로 입을 헹구며 다른 와인맛을 보는 이유다.


그런데 입에 처넣고 우걱우걱 먹으면 맛을 감지할 수 있을까? 먹는 사람은 금방 먹는 감각을 잃어버릴게 틀림없다. 첫 입을 빼고는 그냥 입에 처넣는 거다. 상술이다. 돈을 위해서다.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스스로 자학하고 학대하는 동영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영상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정말 힘들게 먹고살고 있구나. 힘든 정도가 아니고 처절하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중요한 행복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라고 했다. 먹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같이 먹는다는 행위는 관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표현이다. 그러기에 '맛있는'이라는 형용사가 반드시 붙어야 한다. 맛없는 음식을 같이 먹으면 좋던 사이도 멀어진다. "이따위 맛없는 음식을 먹자고 했냐"라고 불평이 들어올 것이다. 이렇게 맛을 음미하려면 마구잡이로 입에 퍼넣어서는 맛을 알 수 없다. '고독한 미식가'라는 일본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많이 먹어서가 아니고 음식을 음미하고 맛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많이 먹는 영상 하고는 수준이 다르다.


맛있게 많이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제는 제발 맛에 집중을 하는 쪽으로 영상을 바꿨으면 좋겠다. 처먹는 방송 안 보면 그만이지만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일 정도로 빈도가 많으니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제발 먹는 것도 품위 있게 먹어보자. 식사를 한다는 것이 의무감에서 먹으면 그것은 식사가 아닌 사료다. 사육하듯 먹지 말자. 살쪄봐야 결국 자기 관리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뿐이다. 


"그래서 남들 먹는 걸 보는 거"라고? 아이고 ㅠㅠ 먹는 거와 관련해서 우리 머리는 그렇게 현명하지가 못하다. 먹방을 보면 무의식 중에 메뉴가 각인되고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맛있단 말이야"로 착각을 하게 된다. 결국 다음날 배달음식에 그 메뉴가 들어가 있는 걸 알게 된다. 알면서도 자제가 힘든 것이 먹는 거다. 눈 가리고 귀 막아야 하는데 이게 잘 안된다. 먹방의 유혹은 짙은 분홍빛 홍등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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