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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25. 2022

골프 스코어카드 숫자의 진실

대부분의 아마추어 주말 골퍼들이 그렇지만 스코어 카드에 적히는 숫자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골프를 한다는 것은 한 라운드에 몇 타를 치는지에 대한 표시로 등장하는 숫자로 말하기 때문이다. 당구 200, 볼링 에버리지 160과 같은 의미로 골프 핸디캡 숫자가 쓰인다. 그런데 골프는 특이하게도 당구처럼 실력에 숫자가 매겨졌다고 해서 계속 그 실력을 유지할 수 없는 희한한 운동이다. 어떤 때는 80대 초반도 쳤다가 어떤 때는 백돌이도 면치 못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어느 골프장 어느 코스에서 라운딩을 했는지, 화이트 티에서 쳤는지, 백 티에서 쳤는지에 따라 스코어가 천차만별로 나올 수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아마추어들에게 "몇 타 치십니까?"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자기의 생애 최고 타수를 이야기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90타대 미만으로만 쳐도 잘 치는 아마추어 골프로 인정을 받는다. 90타 미만으로 치려면 18홀 내내 더블 보기 없이 보기만 1개씩 해야 달성할 수 있는 숫자다. 오비나 해저드로 날아가는 볼이 없고 쓰리 퍼트를 하지 않아야 가능한 숫자라는 것이다. 아마추어 골퍼가 18홀 내내 오비를 안 하거나 더블보기 이상을 하지 않고 쓰리 퍼트를 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많은 경우 스코어카드에는 캐디의 아량과 동반자들의 합동 묵인하에 숫자가 적히는 넉넉함이 같이 있을 수밖에 없다. 숫자에 스트레스받지 않기 위한 아마추어 골퍼들의 공통된 합의로 작동한다. 보통 첫 홀이나 두 번째 홀까지는 화면조정 시간으로 알려져 있거나 대한민국 스코어카드 공통으로 인쇄되어 나온다는 일파만파로 적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첫 홀부터 액면 그대로 타수를 기록했다가는 인정머리 없는 놈으로 찍히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 자기 실력을 과신하는 놈으로 낙인찍혀 18홀 내내 왕따를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또한 캐디의 진행 재량에 따라 전반홀 후반홀 각각 멀리건 하나씩 사용하는 것도 대한민국 아마추어 골퍼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성행하는 관행이며 그린에 올라가서 홀컵 1미터 전후로 볼이 있으면 무조건 오케이 주는 여유도 스코어 카드에 적히는 숫자 크기를 현격히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치는 타수대로 스코어카드상에 숫자를 적으면 대부분 아마추어들은 백돌이를 면치 못할 것이다.

사실 스코어카드 상의 숫자는 평소 연습량과 비례한다. 연습장에도 안 가면서 한 달에 한번 겨우 필드에 나가는 정도의 출격률을 가지고 스코어가 잘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골프는 "비탈길에 세워둔 자동차와 같다"라고 한다. 언덕을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뒤로 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 엑셀레이터를 밟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연습을 해도 겨우 제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소리다. 아마추어 골퍼가 필드에는 대부분 분기별로 한 두 번 나올까 말까 할 것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필드로 나가기 위해 연습장에서 끊임없이 연습과 훈련을 해서 "항시 대기" 상황으로 몸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으며 공짜는 더더욱 없다는 것은 골프에서도 진리다.


스코어 카드에는 진실이 적혀야 하는 게 맞다. 진실이 적혀야 자기 실력을 돌아보게도 하고 연습장으로 가게도 한다. 스코어를 줄이기 위한 자극제로 스코어카드를 활용해야 한다. 생애 제일 잘 친 타수가 기록된 스코어카드를 가지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첫 홀을 화면조정시간으로 만들게 아니고 첫 홀 티샷 전에 준비운동을 하고 예열을 하여 몸을 만든 후에 티박스에 올라가면 된다. 게으른 운동 습관을 스코어 카드의 숫자 조작으로 덮으면 튀어나온 배는 영원히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골프가 운동이 되어야 하는데 대한민국 골프는 운동이 아닌 허세로 둔갑되어 있다. 주말 피크타임 그린피가 30만 원을 넘는 골프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캐디피 14만 원, 카트비 9만 원 된지는 이미 오래됐다. 코로나 팬데믹 전에는 그린피가 보통 주말이 17만 원 ~ 20만 원 안팎이었고 주중에는 7~8만 원대 그린피를 받는 골프장도 많았다. 지금은 그린피가 미쳐도 한참 미쳤다. 돈 없는 사람은 골프채를 꺾게 만든다.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골프 치라는 무언의 압력인가? 싼 골프장 찾다 찾다 야간 라운딩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여름밤에만 벌어지는 진풍경이라 한 번쯤 경험하는 것으로 족한 듯하다. 경험자들은 알겠지만 조명 빛에 그린의 경사도도 헷갈릴 뿐만 아니라 페어웨이만 살짝 벗어나도 볼을 찾을 수가 없다. 그저 더운 낮보다 다소 선선하게 18홀 돌았다는 의미밖에는 아무 성과가 없다. 잔디도 밤에는 쉬어야 하지 않겠나? 


나의 스코어 카드에도 화면조정시간이 포함되어 있음을 고백하고 숫자가 뻥튀기되어 있음을 자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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