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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27. 2022

생각의 판을 바꿔야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세상은 변하는데 나와 내 주변만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안 변하니 당연히 주변도 안 변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시대에 뒤떨어지고 왕따가 되고 꼰대가 된다. 심지어 '변한다'는 정의 자체도 제각각 개념이 다르고 적용 범위가 다르다 보니 어떻게 적응하고 맞춰나가야 하는지 조차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세상과 한참 떨어진 곳에 버려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때는 이미 늦는다.


예민하게 세상이 바뀌는 것을 주시하고 지켜봐야 한다. 그렇다고 부화뇌동해서도 안된다. 변하는 방향을 잘못 선택하면 가만히 있느니만 못한 결과로 갈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참 어렵다. 그래서 삶은 흥미진진해지고 묘한 전율을 전한다. 이 현상을 즐기는 자만이 살아남고 앞서갈 수 있다. 뒤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래도 보조는 맞추어 가야 하지 않겠는가?


변하기 위해서는 현상을 알아야 한다.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눈치채야 한다. 혼자서는 알아채기 어렵다. 자기는 항상 해오던 일이고 보아 온 일상이기에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내기가 쉽지 않다. 옳다고 생각하기에 행동한다. 그 행동이 시대에 뒤떨어진 유물인지는 타인의 행동과 비교해보던가 다른 행동도 가능하다는 쓴소리를 듣고 난 다음에야 알게 된다.


골프 연습장에서 혼자 죽어라 연습하고 땀 흘려봐야 자기 편한 대로 스윙이 바뀌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과 똑같다. 몸은 항상 자기가 편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진화론과 똑같다.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의 방향성이 아니라 자기가 편하고 움직이기 쉬운 쪽으로 계속 나아간다. 한 달간 죽어라 연습했는데 1년 만에 만난 친구로부터 "스윙 자세가 변했는데!"라고 한마디 듣는다.  1년간 연습을 하며 애는 썼지만 골프 스코어카드의 숫자는 개선되지 않는다. 혼자 하는 연습의 진실이다. "유튜브 보고 독학해서 싱글 하는 사람도 있다는데?"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정말 독한 놈이다. 가끔 연습하는 게 아니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집중적으로 연습을 해야 가능한 거다. 


골프던, 사회적 현상의 변화를 관찰해 나의 변화에 참고를 하던,  선행자의 행적을 살펴보고 멘토의 조언을 듣거나 코치의 교정을 받아야 한다.  미리 겪어본 사람의 시행착오를 간접 학습으로 흡수하는 길이 가장 빠른 변화의 길이다.

세상은 빅데이터의 시대로 바뀌었다. 최대 결과치의 확률을 알기 위해서는 전수 조사를 하면 된다. 확률이라고 할 필요도 없다. 확률은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의 크기를 나타내는 수치"를 말하는데 예전에는 전체를 들여다볼 수 없으니 샘플링을 해서 통계를 내어 비율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론이 필요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확률 통계를 이젠 빅데이터 통계로 모든 걸 보여준다. 빅데이터 시대에는 이론이 필요 없다. 모두를 들여다보고 결과를 바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빅데이터 알고리즘 현상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다. 메타와 같은 SNS에서 내가 검색했던 콘텐츠를 분석하여 관심 있어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해 광고로 보여주는 알고리즘은 이미 가장 기본적인 광고 마케팅 수단이 되어 있다.


변화란 이렇게 판을 바꾸는 것이다. 판이 바뀌면 생각의 근본 자체가 달라진다. 예전의 관념을 적용해서는 맞지 않는다. 판이 바뀌면 나도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같이 돌 수 있다. 판이 도는데 내가 안 돌면 어지럽다. 넘어질 뿐이다.


나는 땅에 발을 디디고 편안히 걷고 있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다. 그렇지만 조금 더 넓은 판으로 화성에서 지구를 본다면 지구는 지금 시속 1,675km로 자전을 하고 있다. 시속 100km로만 달려도 손에 힘이 들어가고 정신이 쫄리는데 우리는 지금 이렇게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고 있다. 그럼에도 어지럽다고 느끼지 못한다. 지구가 제자리에서 돌고 있는 속도가 그 정도이고 이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속도는 무려 시속 107,000km다. 이 속도감을 어찌할 것인가?  조금 더 시선의 판을 넓혀볼까? 우리 지구가 속한 태양계는 우리 은하의 중심으로부터 3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데 초속 220km, 시속 792,000km로 움직이고 있다. 인간의 속도계로는 감히 측정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 엄청난 속도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세상의 판 어디에 올라타고 있는지가 중요한 이유다. 어느 판에 발을 디디고 있느냐에 따라 속도감이 달라진다. 느린 판에 앉아 있다면 과감히 일어나 다른 판으로 갈아타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판을 비난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특히 지식의 운동장은 처절하게 편파적이고 차별적으로 기울어져 있다. 판이 기울어져 있으면 기울기를 바로잡는 것보다 갈아타는 것이 더 빠르다. 판의 기울기는 속도의 시각에서 보면 아무 의미가 없다. 보는 시각의 눈높이에 따라 세상은 층층이 쌓여 있고 각 층은 모두 다른 세계다. 좀 더 넓은 다른 층으로 생각의 판을 갈아타야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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