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 글을 쓰는데 한참을 망설입니다. 어떻게 어떤 주제를 가지고 쓸까 고민하게 됩니다. 일기처럼 매일 쓰는 글이라 무엇을 쓸까 고민하기 시작하면 아무 글도 쓸 수 없음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가끔은 글의 단초를 잡아챌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을 정리할 필요와 타이밍이 있습니다. 잠시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백지의 화면을 접하면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한 글자도 타이핑할 수 없습니다.
글이 안 써질 때는 그냥 덮어야 합니다. 반드시 써야 할 의무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와의 약속이기에 약속을 지켜내지 못한 찝찝함이 머릿속 한 구석에 뱀의 똬리처럼 도사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벗어던지듯 머릿속을 열어 뱀을 끄집어냅니다. 아무 생각 안 해도 되는 지금 이 글처럼 그저 그런 일들의 나열을 써내려 갑니다. 의미를 담지 않아도 맥락을 유지하지 않아도 아무런 부담이 없는 그런 류의 글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글의 전개가 무슨 의미가 있나 의심을 하게 됩니다. 시간을 들이고 정보를 모으고 맥락을 유지해 의미를 부여해야 글의 효용성이 가치를 갖습니다.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는 글은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먹고 마시고 돌아다닌 일들조차 잘 연결하여 맥락을 갖게 하고 의미를 가져다 붙이면 나름대로 문장으로의 효력을 갖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상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남들이 사는 일, 내가 보낸 시간들의 시계열적 나열을 한들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될까요?
사는데 어떤 의미로 작동할 것이며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을까 말입니다. 업그레이드되지 못하는 삶은 사는 의미가 퇴색됩니다. 어제보다는 나은 생각, 나은 삶이 되도록 하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일 겁니다.
글의 전개를 하지 못하는 것은 감각을 세워 세상을 보지 않았고 시간이 흐른다는 생각에 정지화면처럼 초침들을 세워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몸이 편하고자 뒹글 뒹글 거렸기에 삶의 의미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입니다. 치열하게 들여다보고 질문하고 답을 찾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했음에도 그러질 않았습니다. 책상에 앉지 못하고 소파에 앉아서 그렇습니다. 일상적인 루틴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기에 생각의 틀도 그 안에서 꼼짝달싹 안 하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알면서 안 되는 일이 일상입니다. 루틴을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됩니다. 특히 생각의 루틴에 번갯불 튀듯 자극을 주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번갯불인지조차 알지 못하니 먹장구름 몰려와봐야 어둠에 대한 두려움만 쌓여갑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표를 놓쳐서 그렇습니다. 목표가 없기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해보게 됩니다. 하다가 아닌가 보다 하고 다른 것을 하기도 합니다. 힘들 거 같으면 내려놓습니다. 그렇게 저렇게 편한 데로 멈추고 맙니다. 한참을 지난 뒤에야 화들짝 게을렀던 시간이 후회가 됩니다. 조용히 덮고 새로 시작해 보려고 머리를 굴려봅니다. 제대로 정리될 리 만무합니다. 좌절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놓아버릴 시간도 물론 필요합니다. 그래야 반성도 하고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자극이 될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정된 미래는 없습니다. 만들어갈 미래는 있습니다. 살아온 과거는 지금 이 순간 드러난 현재의 총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내 모습이 어제 행하고 만들었던 내 모습입니다.
지금 이 시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자명해집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주말에 잠시 게을러져 있었다면 더운 날씨에 핑계를 대고 날려버립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해야 할 일, 해내야 할 일 들에 맞서야 합니다. 뒷걸음치는 장마의 빗소리가 제법 굵다는데 위안을 삼아 봅니다. 자연도 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인간의 마음이야 새털처럼 가벼울 테니 말입니다. 장맛비 속에서도 나뭇가지에 숨은 매미는 시끄럽도록 울림통을 울려고 있습니다. 그것이 매미가 해내는 본능입니다. 익선(翼蟬)이 젖어 날아갈 수 없음에도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정신 차리고 해야 할 일은 매미처럼 제한된 시간을 알차게 쓰는 지혜와 열정을 장착하는 일입니다.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볼 일입니다. 되돌아보고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되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 깨어 있어야 할 이유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