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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02. 2020

너도 그렇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너무도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풀꽃'입니다. 이 봄, 이 자연에 가장 알맞은 표현인 것 같습니다.


아파트 현관문 옆에 서 있는 목련나무는 벌써 갈색으로 산화된 꽃잎을 발 앞에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화사하고 복스럽게 필 때의 가슴 떨림은 단지 일주일을 못 버티고 사그라듭니다. 출근길 발길을 잠시 멈추고 아직 흰색의 단아함을 뽐내고 있는 가지들을 쳐다봅니다. 두툼할 정도의 꽃잎도 만져봅니다. 그리고 발밑에 떨어진 핏빛 꽃잎도 주워 듭니다. 모두가 하나였을텐데 지금은 꽃잎 각 장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전할까 말까 풍겨오는 옅은 향기가 은은히 다가옵니다. 그렇게 나무 한 그루의 생명은 봄과 함께 자연을 순회하여 돌아왔습니다.

인문의 언어로 표현하고 시선의 꽂힘으로 들여다보아야 목련꽃 한 송이가 거기 그렇게 서서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음을 눈치챕니다. 이 계절, 어김없이 찾아와 꽃의 존재로 시절을 알리는 목련나무의 성실함에 감사의 손길로 어루만져 봅니다. 손끝에까지 봄이 왔습니다.


시인의 표현대로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합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본다는 것은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심이 있다는 것은 알아야겠다는 호기심이며 이 호기심은 '앎'으로 귀결됩니다. 안다는 것은 본질을 들여다본다는 것입니다. 


시인의 감성은 본질을 밑바닥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혜안을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이 본질에 대한 규명과 질문은 비단 풀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채석강에 켜켜이 쌓인 판석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2억 5천만 년 전 중생대 때 호수와 강의 저지대였던 서해 바닥의 지형을 떠올리게 됩니다. 공룡이 진흙 뻘밭을 거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를 시인은 단 세줄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그 언어의 주어는 '너'입니다. 바로 '너도 그렇다'입니다.


봄이 왔음을 아는 것도, 그리고 그 봄의 온기를 체감하고 기뻐하는 것도 오롯이 '너' 그리고 '나'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들여다보고 찾고 안아주고 기뻐하는 모든 일이 '너'와 '나'로 인해 생성되고 소멸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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