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Apr 03. 2020

자연의 색

꽃들로 인하여 세상이 점점 화사해지고 있습니다. "화사하다"라는 표현이 조금 과장된 듯 하지만 겨우내 회색 및 잿빛, 그리고 생명력 없을 것 같은 침묵의 색깔들과 비교해서는 화사하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수 있습니다.

색깔이라고 해봐야 희고 노랗고 선홍빛이 전부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색깔이라고 해봐야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뿐입니다. 가시광선의 파장입니다. 그래 봐야 빛의 3원 색인 빨강 파랑 녹색의 배합에 지나지 않는다고 것을 알게 되면 세상의 색깔은 정말 단순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3가지 빛의 색이 합쳐지면 흰색이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그래서 세상 사물이 눈에 상으로 보입니다. 빛 색깔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빛 색깔이 합쳐져 색 색깔처럼 검은 쪽이라면 세상은 암흑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학교에서 제대로 못 배운 색깔의 진실이 있습니다.


빛의 삼원색은 빨강, 파랑, 녹색이고 색의 삼원색은 빨강, 파랑, 노랑으로 배웠습니다. 빛 속의 빨강, 파랑과 색 속의 빨강 파랑이 같은 색일까요? 이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일까요? 단어가 같으면 같은 걸 텐데 말입니다. 우린 그동안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같은 색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로 써놓면 확연히 다릅니다. 빛의 삼원색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입니다. Red(빨강) Green(녹색) Blue(파랑)입니다. 이름하여 RGB입니다. 그런데 색의 삼원색의 영어 표현은 Magenta(자홍색), Cyan(청록), Yellow(노랑)입니다. 이름하여 CMYK입니다. 우리가 알아온 색의 빨강과 파랑이 빛의 빨강과 파랑이 아니었던 겁니다. 실제로 빛의 3 원색과 색의 3 원색을 같이 놓고 보면 비슷하긴 하나 확연히 다른 색상입니다.


이는 컴퓨터에서 포토샵을 써 본 사람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포토샵에서 색상모드를 설정할 때 모니터로 그림을 볼 때는 RGB를 선택하고 프린터로 그림을 출력할 경우에는 CMYK를 선택합니다. 모니터는 빛을 내서 색상을 보여주고 프린터는 잉크를 써서 색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진실은 색의 삼원색을 합치면 검은색이 나온다고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짙은 갈색이 됩니다. 이 때문에 검은색을 출력하는데는 진짜 검은색 잉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잉크 프린터 카트리지에는 검은색까지 4개가 장착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색상조차 정확한 용어의 정의 없이 대충 보고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색에 대한 교육은 그만큼 중요함에도 우리는 색을 그저 섹스의 색으로만 받아들였고 그것도 음란한 성욕으로만 치부했습니다. 그나마 조금 철학적으로 가면 "색즉시공"으로 형상과 물질로 보는 형이상학으로 가긴 하지만 말입니다.


색깔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없던 우리 세대만 해도 연분홍색을 "살색"으로 배우기도 했습니다. 황인종이 피부색이 연분홍빛이니 당연히 살색이라 칭해왔습니다. 얼마나 우매한 용어의 정의였나요. 그럼에도 우린 아무 거리낌 없이 살색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인종 모욕적인 용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색은 빛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사실 이 빛의 색을 분리해 내고 구분하고 조합해 내는 것도 모두 생명체가 만들어낸 진화의 산물입니다. 살아있는 것 중에서 진화를 빼고는 현재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특히 색에 있어서는 식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합니다. 인간은 색을 인지할 뿐이지 색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겨우 피부색 정도의 감도만을 멜라닌 색소를 통해 표현해 냅니다. 이는 인간이 색을 통해 진화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 식물의 경우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공간을 이동할 수 없기에 다른 이동체를 끌어들여야 합니다. 바로 식물의 진화입니다.


꽃이 없이 포자로 증식을 하는 양치식물에서 꽃가루를 퍼트리는 식물로, 꽃으로 번식을 하는 현화식물로, 그리고 가장 진화한 초본식물까지 진화를 거듭해왔습니다. 순차적인 진화가 아니고 진화의 시작이 각기 다른 자연환경에 맞게 번성함에 주목해야 합니다. 현화식물은 움직이는 동물을 이용해 번식을 하기 위해 매개체를 유혹하는 색을 진화시켰습니다. 동물이 빨간색을 인지하기 시작한 때가 10만 년도 안됩니다. 공존하는 것이죠.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제공하고 제공받는 공생. 이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인간만이 자연에서 무제한적으로 빼내 쓰는 욕심쟁이일 뿐입니다. 자연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 색깔의 향연을 눈으로 즐기고 받아들이며 자연이 펼쳐놓은 색깔에 물들기만 하면 됩니다.  코로나로 '사회적 격리'를 실천해야 하는데 유혹하는 자연의 색을 뿌리칠 수 있을까요? 당장 내일이 주말인데 --- 곧 벚꽃도 질 텐데 --- 차에서 내리지 않고 지나가며 눈으로만 감상하는 looking through라도 하며 봄의 색을 눈에 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복장 터지는 이 갇힘을 이겨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너도 그렇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