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Lohengrin Aug 26. 2022

친구 따라 대학원 졸업한 사연

어제 대학원을 졸업했다. 나이 환갑을 앞두고 다닌 대학원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지는 차치하고 그래도 무사히 졸업을 했다는 것에 일단 의미를 두고 싶다.


사실 인생의 큰 역할을 기대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아니다. 학위를 위한 공부를 하려면 보다 젊은 나이에 시작했어야 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시기적으로 내년이면 환갑인데 이 나이에 대학원 공부해봐야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 생각했다. 가까운 친구 중에도 박사들이 수두룩한데 이제 석사 공부해봐야 공부했다는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대학원 공부는 내 인생에서 시기를 놓치고 검정고시 준비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심정이었다. 그것도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 따라 대학원에 등록했다. 먼저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내고 인터뷰를 기다리던 친구의 반 권유, 반 속임(?)을 당해서 인터뷰 당일날 끌려가듯 가서 같이 인터뷰를 했다. 학교가 집에 가는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저녁 퇴근길에 들러 가자는 꼬드김에 넘어갔지만 전공도 광고홍보학이라 내 평생 30년 직장생활이 홍보일이었는데 이론과 실무의 경계가 어디쯤 인지도 은근 궁금하기도 했다. 또한 나중에 퇴직하고 어떤 기회로 활용할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심도 작용했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대학원 공부가 시작됐다. 코로나가 득세하기 전인 2020년 1월이었다.


그런데 등록을 하자마자 코로나19로 인하여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WEBex를 통해 온라인으로 교수님을 만나고 동기들 얼굴을 보며 수업을 했다. 뭐 얼굴을 보고 마주 앉아 수업을 하고 강의가 끝나면 모여서 소주라도 한 잔 하면서 사는 이야기라도 해야 정 도 들고 할 텐데 코로나의 벽은 높기만 했다. 2년 내내 비대면 강의를 진행했다. 심지어 신입생 환영회조차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학교를 다닌 것이 아니라 가상세계의 대학을 온라인으로 졸업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수업의 강도가 느슨했던 것은 아니다. 대면 수업이 아닌지라 강의 집중을 염려해서 그런지 더 많은 리포트와 논문자료 검색 요약 및 토론을 요구했다. 한 학기에 관련 논문 15편을 선정해서 요약하고 의견을 첨부한 후 매주 돌아가며 발표하게 하고 토론을 하게 하기도 했다. 외국인 동기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은 얼굴을 마주 봐야 표정도 자세히 읽고 감정도 눈치챌 수 있는데 화면 속 얼굴에서는 아무래도 이런 교류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교수님과의 관계도 서먹서먹하다. 의례적인 인사밖에는 할 수 없다. 그렇게 실제 얼굴도 못 뵌 교수님들이 태반이다. 동기들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이전 대학원 동기들은 매번 수업 후에 모여 뭉쳤고 주말에는 골프다 등산이다 우애를 다졌단다. 그런데 '코로나 학번'인 2020 학번에게는 모인다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이었다. 코로나 2년 동안 확산세가 주춤하는 시기에 동기들이 소집되어 모일라치면 데면데면했다. 이런 분위기를 간파하고 모일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만남을 주선한 동기 회장의 역할이 큰 힘이 되었다. 수장을 잘 세우는 일은 이렇게 작은 모임에서도 중요하다.


그렇게 '코로나 학번'으로 2년 반의 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올해 1학기에 공부를 같이 하셨던 교수님은 미국으로 다시 들어가셨는데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그나마 올해는 코로나가 주춤하여 대면 수업을 해서 얼굴을 익힌 영향이었고 정이 많으신 분이라 학생들과의 관계를 아주 귀하게 생각하셨다. 한국 학교에서의 강의가 처음이신데도 불구하고 늙다리 학생의 입장을 잘 이해해주시기도 했다.  한 학기 동안 리포트를 4차례나 제출했는데 그때마다 모든 학생들의 리포트에 일일이 의견을 달아 되돌려 주셨다. 공부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는 역할을 해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원 졸업을 하면서 '최우수 졸업상'도 받았다. 젊은 원우들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발악을 한 수준이라 생각하면 족하다. 전 과목 A+를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안에서 얻은 지식의 무게가 그만큼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천근만근이다. 나도 이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의 은퇴시기가 26개월밖에 안 남았다. 대학원 공부가 은퇴 후 삶에 어떤 기회로 작동할 것인지는 아직 가늠할 수 없다. 그렇지만 재능기부의 기회로는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차근차근 준비하다 보면 좋은 일로 되돌아올 것이 틀림없다.

작가의 이전글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밥상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