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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29. 2022

소피 마르소, 미의 위엄

일요일이었던 어제, 늦은 브런치를 먹고 집안 청소를 하고 여유롭게 거실 TV와 마주하고 앉았다. 12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공중파 채널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은 그렇고 그런 류라 리모컨의 손가락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채널 서핑을 하며 돌아가던 화면에 일순 손가락과 눈이 멈추었다.


소피 마르소가 화면에 나온다. 영화는 아니고 영화를 소개하는 '출발 비디오 여행'프로그램이다.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 66년생이다. 9월 초에 새로운 영화 '다 잘된 거야(Everything went fine)' 국내 개봉을 앞두고 소개하는 티저 영상 속에 등장한다. 영화 스토리는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소피 마르소의 얼굴만 레이저 화살처럼 따라다닌다. 56세 중년을 넘은 여배우의 얼굴을 말이다.

네이버 사진 캡처

지금 50-60대 남자 꼰대들의 사춘기 시절을 지배했던 외국 여배우들이 있었다. 책받침과 브로마이드 여신으로 80년대 남학생들의 심장을 뛰게 했던 브룩 쉴즈, 피비 케이츠 그리고 소피 마르소다. 이 세 여배우 중 소피 마르소는 청순한 소녀의 대표 이미지였다. 영화 라 붐(La Boum) 속의 헤드폰 소녀의 모습은 소피 마르소를 그 모습 그대로 남학생들의 가슴에 박제시켜 버렸다.


그렇게 가끔 옛 애인의 근황이 꿈결 스치듯 궁금해질 때 소피 마르소의 얼굴도 오버랩되어 기억의 한편을 지나간다. 그러다 어제 TV 화면 속에서 소피 마르소의 날 얼굴을 마주했다.


'날 얼굴, 민 낯'


성형을 전혀 안 한 얼굴이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유명 여배우인데, 나이가 환갑을 바라보고 있는데 보톡스나 필러라도 맞았을 법한데 화면상 비치는 소피 마르소는 전혀 그런 정황이 안 보인다. "그것도 성형 기술인가?"라고 의문을 가질 정도로 민낯이다. 영화 캐릭터에 맞게 분장을 해서 그런가? 늙어 보인다. 세상 어느 여자고 남자고, 젊어지고 싶은 마음이 안 들겠는가? 왜 성형을 해서 주름을 없애고 점을 빼고 피부의 탄력을 위해 좋은 화장품 안 쓰고 싶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대 중반을 넘어선 여배우의 얼굴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멈추거나 뒤로 돌리고자 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것도 자신감일까?


영화 스토리에 부여된 배역에 따라 화장과 분장을 했을 수 있으나 내가 본 소피 마르소의 얼굴은 맨 얼굴 그대로였다. 세월과 시간의 덮개가 지나가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의 모습을 세월이 지나 보게 되면 실망한다고 한다. 기억 속 첫사랑의 모습은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텐데, 시간의 풍파가 지나간 현실에서는 그 삶의 파고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게 보통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멈춘 상상과 시간이 흐른 현실의 차이는 너무도 큰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추억은 추억으로 영원히 간직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간혹 인생의 후반기에 첫사랑을 우연히 만나 재회를 했다는 드라마 같은 스토리가 전해져 오기도 하지만 그만큼 드물기에 회자되는 일일 것이다.

영화 '다 잘된거야' 티저 영상 캡처

하지만 화면 속에 보인 50대 후반의 소피 마르소 모습은 있는 그대로여서 더 좋게 보였다. "나만 세월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유명 여배우도 세월의 흔적을 안고 사는구나" 하는 위안이기도 했다. 비슷한 연배의 몇몇 국내 배우들이 못 알아볼 정도의 성형으로 버티고 있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미의 위엄'은 있는 그대로 비칠 때 더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음을 알았다. 감추고 흔적을 지운다고 시간조차 세월조차 없어지지는 않는다. 시간의 흐름만큼, 그만큼 보여주는 모습이 더 호감이 간다. 


추석 개봉 영화로 소피 마르소를 볼 수 있다니 극장에서 소피 마르소를 만나봐야겠다. 가슴 떨림까지는 아닐지라도, 빛바랜 책받침 속 그때 그 모습은 아닐지라도, 상영시간 내내 추억의 상상이 오버랩되어 영화 스토리가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그냥 그 시간이 좋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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