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알고리즘을 만들 때 특수한 기능을 하도록 짜는 것이 범용의 기능을 하도록 만드는 것보다 쉽다고 한다. 이세돌에게 유일하게 한번 졌던 바둑의 알파고는 그 이후 더 이상 상대할 인간이 없을 정도로 전승을 기록하는 바람에 폐기 처분됐다. 알파고는 바둑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최강이었지만 다른 기능은 전혀 할 수가 없다. 인간처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범용형 알고리즘은 아직 없다는 말이다.
빅데이터를 돌려 순간적으로 자료를 찾아내고 소설을 써내고 감정을 가졌다고까지 오해를 받는 알고리즘조차 걸어서 돌아다니지 못하고 아침에 커피조차 마시지 못한다. 휴머노이드가 등장하여 인간의 행위를 흉내 내겠지만 모닝커피를 마시며 정신이 맑아진 것처럼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AI가 세상을 지배할 것처럼 몰아가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 생명의 역사 46억 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내장하고 진화해 왔기에 이제 겨우 100년도 안된 시간을 담고 있는 AI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것도 AI는 자연이 만들어낸 피조물이 아니고 인간이 만들어낸 2차 피조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AI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전원 스위치를 내려버리면 된다. "인공지능 청소기는 충전을 위해 전원을 찾아간다고?" 두꺼비집 스위치를 내려버리면 된다.
AI의 세계는 조건의 세계다.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건을 걸어줘야 한다. 조건을 걸면 비교대상의 절반이 사라진다. 선택하는 정보는 2n승으로 계속 줄어들게 된다. 가능성의 세계는 계속 절반으로 줄어들어 예측이 되고 선택이 되어 결정된다. 바로 조건 지어진 세계를 사는 인간의 마음을 알고리즘으로 끌어들인 것이 AI다.
AI는 조건을 분류하는 기계다. 분류를 해야 구분이 된다. 속성별로 묶여 개념이 되고 존재가 등장한다. 최적의 분류 함수를 구해내는 것이 인공지능의 핵심이다. 분류 함수가 어느 상황에 잘 맞는지, 어느 존재에 적합한지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아직까지는 한 가지 특수한 기능을 월등히 잘하는 분류 함수의 인공지능을 개발한 수준이다. 인공지능은 아직까지 숲을 보기보다는 나무를 보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더 적합하도록 개발되고 있다.
숲을 보기 위해서는 적당히 잘해야 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잘할 수는 없다. 적당히 잘해야 다음에 좀 더 잘하고 싶고 그다음에는 그보다 좀 더 잘하고 싶어 진다. 인간은 애매한 것이 특징이다. 적당히 하고 적당히 물러나 주어야 다음에 다시 도전할 힘을 얻는다. 계속 반복하게 하는 힘이다. 그렇게 계속 반복하다 보면 핵심에 다가서게 되는 게 인간이다.
교지졸속(巧遲拙速 ; 완벽을 기하고자 시간이 걸리는 것보다 완성도는 미흡하더라도 신속하게 하는 것이 더 낫다)이라 했다. 완벽하지 않은 적당함을 통해 반복의 기회를 갖고 시행에 옮겨야 보완할 힘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은 조건을 앞설 수 없다. 조건 자체가 존재이기 때문이다. 갈 건지 말 건지, 먹을 건지 말 건지 조건의 연속이 존재를 결정하고 자아를 만든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빠른 결정을 통해 조건을 계속 반으로 줄이고 결국 행동을 하는 과정이 사는 과정이고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매 순간 조건을 선택하는 일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