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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08. 2022

추석 명절, 고향 가는 길의 추억

이번 추석 연휴에는 고향에 내려가십니까?


명절임에도 코로나의 창궐로 인해 2년 넘게 부모님 계신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신 분들이 많이 계실 텐데 그나마 올해는 가족 모임 정도는 가능해져 많은 분들이 고향방문을 계획하고 계시더군요. 신체 기능이 많이 떨어진 어르신들이 계신 고향이라 코로나로 고생하실까 봐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명절만 되면 자식들 보고 싶어 기다리시는 부모님들의 간절한 눈길 때문에 길을 나서기도 합니다.


저도 고향은 강원도 원주입니다. 30여 년 전 결혼을 하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올라온 관계로 지금은 원주에 일가친척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나마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있었던 곳이기에 초중등 학교 친구들이 살고 있어, 경조사가 있거나 모임이 있으면 가끔 내려가는 정도입니다. 세월이 흐른 만큼 지금은 내려가면 길도 못 찾습니다. 도시 규모가 엄청 커져서 예전에 살던 집과 동네는 아파트촌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어쩌다 원주에 내려갈 일이 있으면 옛날 일들이 생각나, 집이 있던 곳으로 찾아가 보곤 합니다. 집이 있던 장소는 도로가 되어 있습니다만 증강현실 돌리듯 머릿속에는 예전 집과 동네가 복원되어 흘러갑니다.


고향은 기억이고 추억이고 향수입니다.


1983년 대학을 서울로 오고 1993년 결혼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오기까지 10년 세월 동안은 설과 추석 명절에는 원주로 내려가는 행렬에 끼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코레일이나 고속버스가 온라인 예매를 받고 했지만 그 시절만 해도 예매일이 정해지면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에 줄을 서서 표를 사야 했습니다. 예매일이 공지되는 날부터 기차역 예매창구 앞에서 노숙을 하는 모습이 언론매체에 심심치 않게 등장했습니다. 말 그대로 예매 전쟁이었습니다. 사실 이 예매 전쟁에는 고향을 가고자 하는 귀성객들의 간절한 본능이 주류이지만 이렇게 힘든 예매표를 사서 되파는 야매꾼들도 한 몫했습니다.


지금도 명절만 되면 자동차로는 서울서 대전까지 3시간, 부산까지는 5시간, 목포까지는 6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는 예측 보도들이 등장합니다. 제일 혼잡할 날과 시간까지 예상하여 알려주고 실시간 교통량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그나마 기차는 밀릴 일이 없으니 예매 1순위였고 고속버스도 버스전용차선을 달리니 자가용으로 내려가는 것보다는 훨씬 시간 절약을 할 수 있어 예약 2순위였습니다. 지금이야 고향까지 걸리는 시간 때문에 교통편 여부를 따지지만 80년대만 해도 자가용 가지고 있는 집이 흔치 않았습니다. 구닥다리 자가용이라도 있으면 타고 가서 동네에 자랑도 하고 싶겠지만 그럼에도 도로 사정이 지금보다 훨씬 열악해 고향 가는 길이 곧 고생길이었습니다.

2012년 9월 서울역 추석 예매 모습 / 연합뉴스 기사 사진 캠쳐

그래서 저도 원주에 내려갈 때는 동서울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주로 이용했습니다. 시외버스도 예매를 하긴 했지만 터미널에 가면 임시 배차 차량이 있어 줄 서서 탈 수 있었고 당시에는 입석으로도 탈 수 있었습니다. 정말 콩나무 시루처럼 사람을 태웠습니다. 원주까지 해봐야 2-3시간 정도 가면 되니 서서 가는 것을 감내하는 것입니다. 시외버스 입석은 정말 고역입니다. 앉아있는 사람도 민망하고 한치도 움직일 수 없는 공간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좌석 등받이를 꽉 붙잡고 서서 가는 광경은 되돌아 생각해보면 끔찍합니다. 그나마 입석으로 타는 것조차 어렵다고 판단되면 터미널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나라시 봉고차를 탈 때도 있었습니다. 터미널 주변에 같은 방향으로 가는 전세버스나 봉고차들을 대놓고 귀성객들을 유인해서 태우고 갔습니다. 시외버스 운임보다는 돈을 더 주고 타는 거지만 그렇게라도 고향에 내려가야 했습니다. 


그게 고향이었습니다. 아니 고향 이기전에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뿌리에 대한 본능이었습니다.


지나고 나면 기억은 미화되어 재생되는 관계로, 피난길 같은 명절 귀향길이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만들고 전을 부치고 차례상을 준비하면서 가족임을 재확인합니다. 가족 단위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관습이 점차 엹어져 가는 시대이긴 하지만 그래도 부모님과 오랜 친구가 기다리고 있을 고향 마당에는 대추와 밤과 감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그 온화한 풍경 속에 한 자리 차지하고 정을 나눌 겁니다. 흐뭇한 명절 풍경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고 복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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