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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13. 2022

달라짐을 눈치채는 일, 반드시 필요한 관찰이다

추석 명절이 지나고 나니 어둠의 기세가 한층 넓어진 듯합니다. 같은 시간에 나선 출근길이 어둑어둑합니다. 물론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서 그렇기도 합니다만 오늘 아침 서울의 아침 해 뜨는 시간이 6시 12분입니다. 계절의 시계추와 관계없이 출근시간이 일정하다 보니 아침시간에 마주하는 명암의 농도차가 변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것도 오늘처럼 명절 연휴로 인하여 사나흘 출근하지 않다가 길을 나서면 느끼게 되는 변화입니다.


달라짐을 눈치채는 일.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관찰입니다.


매일 매 순간은 어제와 다르고 방금 전 1분 전이 다른 조건에 직면합니다.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아니 인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 겁니다. 어둠의 길이가 조금 길어졌다고 해서 사는데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서히 물들고 서서히 익어가면 눈치채기 힘듭니다. 적응입니다. 갑자기 닥치는 변화가 아니라면, 살아가는데 크게 문제가 없으면 그냥 그렇게 적응해서 살아갑니다. 진화입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상황에 맞춰가는 것이 산다는 겁니다.


달리지고 변하는 것에 민감한 이유는 "인간은 항상 미래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필요에 의해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하여 시간에 금을 그어 놓았지만 보이지 않는 허공에 금을 그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언제가 과거고 언제가 현재이며 언제부터가 미래일까요? 금을 그을 수도 없고 볼 수 도 없습니다. 관념에 금을 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어제라는 허상의 틀을 만들어 놓고, 지나간 시간에 족쇄를 채워 놓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굴레에 갇혀 버립니다. 과거는 항상 현재로 끌려와 붕괴되어 새롭게 만들어지는 요소로 작동할 뿐입니다. 현재 또한 반드시 미래를 지향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겁니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는 순간순간을 편의상 시간축으로 이야기할 뿐입니다.

나(Self)라는 존재는 기억이 전부일 수 있습니다. 물질적 형체를 갖추고 있는 몸에 화학적 에너지를 100년 동안 돌리면서 그동안 경험하고 체험한 일들의 집합을 '자기'라고 알고 있을 뿐입니다.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 자아는 자기일 수 없습니다. 남들이 보는, 남들이 이름을 붙여 놓은 존재일지라도 자기의 기억이 일치되지 않으면 존재로서의 의미가 없습니다. 기억의 집합이 결국 자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억은 반드시 예전 기억을 지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 기억이 없으면, 예전 기억의 그물망에 걸려들지 않으면 새로운 기억은 저장되기 힘듭니다.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기가 어려운 이유입니다. 감정의 느낌표를 붙여 기억의 인출에 우선순위를 매겨 놓아야 겨우 생각이 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옛 기억이 떠오르면 과거 기억은 붕괴되고 현재적 사건으로 재부활합니다. 기억은 인출 빈도가 많으면 많을수록 비용이 적게 들어갑니다. 자주 꺼내 쓰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주 쓴다는 것은 습관화한다는 겁니다. 무의식적으로 처리되는 습관에 인출 비용이 거의 안 드는 이유입니다.


기억은 과거의 경험을 저장하는 데이터베이스라기 보다는 현재를 트리거하기 위한 발화제입니다. 생각과 행동은 전적으로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억은 과거이지만 쓰이는 시제는 미래입니다. 기억의 저장고를 뒤지는 행위는 과거에 머물기 위한 것이 아니고 끄집어내어 미래의 위한 행동에 쓰기 위함입니다. 행동은 항상 미래를 향해 있습니다. 움직임 자체가 미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연의 시간이 변하고 있음을 눈치채는 일은 나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인지 비교하는 일입니다. 자연의 종속변수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적응해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미래지향적 판단입니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매일 매 순간 치열하고 처절한 변화를 감시하고 맞춰가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야 미래지향적인 삶을 잘 살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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