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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30. 2022

듣고 나면 까먹는 인문학 강좌

인문학 유행은 아직도 식지 않고 있다.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이니 유행을 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거기다 산업화의 급격한 발달로 인간성 말살이니,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 사회가 삭막해져 가고 있다느니, 고전을 읽고 배워야 하는데 그게 안돼서 그렇다느니 온갖 장황설을 가져다 붙여 대학마다 CEO 과정을 개설해 인문학 강좌를 열고 기업들도 직원들의 복지와 여유 있는 삶을 위한 강좌에 인문학 특강들을 개설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인문학 강좌들이 열풍을 타고 흩뿌려졌음에도 우리 사회는 왜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을까? 사람들의 교양이 크게 늘었는가? 인권이 살아나고 인본주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가? 말이다.


사실 인문학 강좌 몇 번 들었다고 하루아침에 급격히 인품으로 변하고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님은 다들 알고 있다. 이것이 함정이다. 듣고 또 들어도 그때뿐이라는 것이다. 엄청나게 유명하고 멋진 인문학 강좌를 들을 때면 세상이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강의가 끝나고 강의실을 나서는 순간, 머리는 원래 그대로 다시 세팅된다. 무언가 듣긴 들은 것 같은데 남아있는 것이 없다.


인문학은 말 그대로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거나 인간의 가치와 인간만이 지닌 자기표현 능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사상과 문화를 탐구하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 천차만별의 변주가 존재한다. 보편적으로 적용될 듯 하지만 현실에서는 주관적으로 작동한다. 사례마다 다르게 해석되고 다르게 움직인다. 당연하다. 똑같은 사람이 어디 있고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사례는 사례일 뿐 그 사례가 나의 생활과 생각에 녹아들어 기능을 하기가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 이게 인문학 강좌를 수없이 들어도 인품이 바뀌지 않는 배경이 아닌가 한다.


또한 인문학은 끝을 한계 지을 수 없다. 어디까지 공부해야 한다는 상한선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람도 백과사전을 모두 외울 정도는 안된다. 심지어 백과사전을 다 외운다고 해도 인문학의 모든 것을 담고 있지도 못하다. 그저 옆 사람과 비교하여 좀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하는 수준이지, 그 수준조차 높이를 가늠할 수 없고 최고의 경지도 아니다. 

인문학 공부가 지식의 허영심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서는 곤란하다. 남들보다 조금 더 안다는 자랑질의 원천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인문학은 사람과 사회가 유지되는 관계학이자 지혜를 공유하는 나눔의 분야다. 무한대의 확률로 일어나는 사람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좀 더 가치 있는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여 인간다움의 경계를 높이는데 인문학의 의미를 담아야 한다.


인문학 중 하나인 역사를 공부하는 경우에 있어서 씨줄은 연도와 장소, 사람 이름이다. 언제 어디서 누가가 정해지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온갖 행위는 관계로써 자연스럽게 날줄에 엮여 들어온다. 역사는 시간과 공간의 함수인 것이다. 많이 들어 본 소리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그렇고 자연과학의 온갖 물리적 속성이 바로 이 시간과 공간의 함수를 밝히는 것이다. 인문학도 한치도 벗어날 수 없다. 사람도 우주와 자연의 한 구성요소일 뿐이기 때문이다. 


바로 과학의 시선으로 인문학을 바라보면 거미줄에 파리 걸리듯 사건들을 잡아챌 수 있다. 과학은 숫자다. 증명하고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정성적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는 인문학의 볼맨 소리는 이제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숫자로 확률로 결과를 제시하지 못하면 과학이 아니다. 과학의 영역으로 인문학이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경계다. 그렇다고 사람의 감정과 감상과 창의성을 숫자로 어떻게 제시하냐고 들이대면 곤란하다. 


인문학은 과학에서 사용하는 숫자를 잘 활용하면 된다. 인문학이 뜬구름처럼 우리의 머릿속에 잠시 왔다가 떠나가는 것은 숫자로 각인시켜 박아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 속에 박아놓은 연도와 연도의 기둥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작은 움직임을 이야기할 뿐이다. 


인문학을 보는 관점을 과학의 시선으로 넓히고 높이면 선명한 기억으로 가두어둘 수 있다. 좋은 말, 좋은 글들을 적어놓은 수첩을 들추는 것처럼 인문학은 사람들의 관계를 꺼내 반추하는 일이다. 이 가을에 잊히지 않고 가슴에 남을 유익한 인문학 강연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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