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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04. 2022

수컷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지난 8월, 로이터통신은 최근 4년간 미국 플로리다에서 부화한 바다거북이 모두 암컷이었다고 밝혔다. 이런 현상은 호주에서도 발견되었는데 2019년 호주 북동부 연안에 사는 새끼 푸른 바다거북의 암컷 비율이 99%를 기록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지구온난화가 종의 성비 불균형을 가져오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성비 불균형의 이유는, 수정될 때 새끼의 성별이 정해지는 포유류와 달리 바다거북, 악어 등과 같은 파충류들은 '알이 부화할 때 온도'에 따라 성별이 결졍된다. 그중에서도 바다거북은 알둥지를 덮고 있는 모래 온도에 따라 성별이 정해진다. 이는 암수 성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유전자가 염색체 안에 모두 들어있기 때문으로 '인접성 자웅동체'라 한다. 대부분의 동물은 암컷과 수컷으로 구분된 자웅 이체로, 이는 자손이 암컷과 수컷의 유전자를 각각 절반씩 물려 받음으로써 유전적으로 변이를 일으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개체수가 많아져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다거북은 모래 온도가 섭씨 27.7도 이하에서 부화하면 수컷, 31도 이상에서 부화하면 암컷이 된다. 중간 정도의 온도에서는 암수의 비율이 1:1을 나타낸다.  최근에 태어난 바다거북의 99%가 암컷이라는 소리는 폭염으로 바닷물의 온도 및 해변 모래밭의 온도가 높았다는 뜻이다. 바다거북의 성비 불균형은 전적으로 지구온난화 영향 때문인 것이다.


다윈의 성 선택 시각에서 보면 "자연에서는 생존에 불리하더라도 번식 이득이 크면 그 형질로 진화할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암컷과 수컷은 서로가 서로를 진화시키고 갈등 속에서 균형을 이루며 진화"해야 한다. 바다거북의 '인접성 자웅동체' 형질도 진화에 의해 선택된 것일 텐데 그 진화의 방향이 지구온난화의 환경에 맞지 않게 된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인간에 의해 인위 선택이 되어 버린 형국이다. 

인간은 자연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동물 종을 멸절시키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있다. 자연은 온도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것이라고 애써 회피하고 있다. 인간이 아무리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인다고 해도 화산 폭발 한 번이면 인간 활동으로 수십 년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한 방에 내어 놓는데 애쓸 필요 없는 것 아니냐고 외면한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내가 버린 것이 아니라고 위안을 삼고 있다. 저 공장 굴뚝이 문제이고 하천에 흐르는 썩은 폐수가 문제라고 목소리 높이고 눈을 부라리고 있다. 책임회피다.


1958년부터 하와이 마우나로아에서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 양을 매일 측정해온 결과를 보여주는 킬링 곡선(Keeling Curve)은, 현재 지구의 온도를 올리고 있는 주범은 인간의 활동임을 밝히고 있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늘고 있는 화석연료 사용에 기인하고 있음은 피해 갈 수 없는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거북의 알을 그늘로 옮기거나 산란장이 있는 해변에 그늘막을 설치하는 등 '거북 냉각 프로젝트(Turtle Cooling Project)'로 수컷 부화율 및 생존율을 높이고 있기도 하지만 역부족이다. 인간에 의해 변해가고 있는 환경 속에서 이를 늦추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또 다른 인간이 있는 아이러니의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종의 다양성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생명의 순환도 유지된다. 어느 한 종이 멸절하면 연계되어 있는 생명들이 연쇄적으로 사라진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인간의 인위 선택에 의해 변형된 종만 남게 된다. 그나마 동물원에 서 볼 수 있는 종들도 사라져 간다. 유전과학의 발달로 종을 되살릴 수 있다고? 그럴 수 도 있겠지만 그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종의 다양성이 훼손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도록 약간의 노력만 하면 엄청난 자원을 투입하지 않아도 된다. 조금 불편한 것에 적응하면 되지만 그게 귀찮고 편리함만을 추구하다 보면 멸절의 고리를 벗어날 수 없다.


우주의 물질은 질량에 따라 나이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 태양 운명의 나이는 100억 년이다. 현재 46억 년을 살아왔고 이제 대략 50억 년 남았다. 태양이 품고 있는 수소의 핵융합이 끝나는 시점이다. 태양의 수소가 다 타서 핵융합이 멈추면 적색거성으로 커지고 태양과 운명을 같이하는 지구는 태양의 품 속으로 들어가 녹아 없어질 것이다.


겨우 100년의 한 세대를 사는 인간의 시선으로 지구와 태양의 운명을 들여다보는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 스스로 자멸의 길을 앞당겨 들어가고 있는 것은 최소한 막아야 한다. 생물 종과 종의 갈등에서부터 같은 종안에서의 갈등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젠더 갈등이 그렇고 점점 더 유니섹스의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도 자연의 변화에 따라가고 있는 현상이 아닌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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