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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05. 2022

글에는 리듬이 있다.

좋은 글은 어떤 글일까? 내용이 명쾌하고 교훈을 담은 글? 유머가 살아있거나 감동적인 글? 


내용적인 면에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좋은 글의 정의를 '리듬이 살아 있는 글'이라고 하고 싶다. 리듬이 살아있다는 것은 읽기 편하다는 뜻이다. 리듬에는 형식과 내용이 같이 담겨야 귀에 거슬리지 않는 글로 읽힌다.


글의 형식은 문장의 길이와 주어와 목적어와 서술어를 놓는 위치의 중요성이며 내용은 콘텐츠의 품질이다.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서너 줄을 넘어가는 길이로 이어지면 읽는데 호흡이 벅차다. 읽는 리듬이 안 맞는다. 또한 형식은 단문으로 짧을지라도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단어가 난해하면 역시 읽고도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읽는 행위를 위한 전 단계다. 문장을 통해 뜻을 전하는 행위는 같을 수 있으나 써놓기만 해서는 뜻을 전할 수 없다. 반드시 글을 읽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이 읽는데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리듬이다.


짧은 단문으로 쉽게 쓴 글은 읽기는 쉬우나 쓰기는 힘들다. 그래서 글쓰기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생각나는 대로 써놓으면 글쓰기인 줄 착각한다. 절대 아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고민은 많이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민이 어떤 내용의 글을 쓸 것인지를 고민하지, 글을 구성하고 있는 형식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듯하다. 온라인에 차고 넘치는 글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내 글도 마찬가지이니 반성할 일이다.

'우리말 바로 쓰기'를 시리즈로 5권이나 내신 이오덕 선생님은 "될 수 있는 대로 민중들이 잘 안 쓰는 말을 써서 유식함을 자랑하고 싶어 하거나 적어도 너무 쉬운 말을 써서는 자기가 무식하게 보일 것을 염려하는 것이 글쟁이들에게 두루 퍼져있는 버릇이다. 이 부끄러운 버릇을 싹 뜯어고치지 않고는 우리 말글을 살릴 수 없다"라고 하셨다.


우리말과 글에 익숙하다는 것은 글의 리듬에 적응해 있다는 것이다. 글을 써놓고 한번 읽어보면 호흡이 맞는지 안 맞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글쓰기의 호흡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몇 가지가 바로 한자와 일본말, 그리고 근래에는 영어 단어가 끼어들어서 사용되고 있는 현상이다. 이들 외래어 단어와 조사가 우리말에 섞여있으면 리듬에 부조화가 발생한다. 우리말과 글의 명료함과 아름다움이 깨진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의 언어생활과 글쓰기의 폐부까지 외래어는 들어와 있고 이제는 오히려 같이 동화되어 하이브리드 언어로 진화를 하고 있는 듯하다.


정확한 의사를 전하고자 하는 언어의 기본 특성상 말과 글도 공동체에서 계속 사용되어야 살아남는다. 시대를 대변하는 신조어들이 무수히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현상도, 사회에서 그 단어가 인정을 받아 살아남느냐가 관건이다. 말과 글과 언어는 한번 만들어지면 영원불멸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다. 당장 77년 전 일제 압제기로부터 해방되던 해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연설 동영상을 들어보거나 신문기사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같은 글 같은 말인데 글은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되며 말은 들리는데 억양과 리듬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가끔 TV에서 보여주는 "나 때는 말이야~"의 '대한늬우스'영상 속 성우의 목소리를 들어봐도 리듬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30~40년밖에 안 지난 영상의 목소리다.


말보다 글 속에 외래어 속성이 더 많이 들어와 있음을 자아비판해야 한다. 이오덕 선생님이 지적했듯이 글쟁이들이 보이고자 했던 유식함의 오만을 표현하고 있지 않나 반성해야 한다. 한글 이전부터 문자 지식의 창구였던 한자와 일제 강점기 일본어의 번역 과정에서 여과 없이 우리말에 끼어들어온 수식어들, 그리고 근세 들어 마치 영어 단어를 쓰면 멋져 보이는 착각의 문장들을 되도록이면 우리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으면 바꾸어나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말과 글의 리듬을 살리는 길이고 우리 민족의 정신을 리듬으로 이어주는 길이다. 곧 한글날이다. 세종대왕께 부끄럼 없는 후손으로 예쁜 글의 리듬을 살려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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