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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07. 2020

도시의 봄, 시골의 봄, 마음의 봄

구름도 끼고 그 사이로 보이는 주황빛으로 둥글게 보이는 태양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안개의 두께가 빛의 속도를 늦춘 모양입니다. 그렇게 묘한 아침 분위기가 옷깃까지 여미게 합니다. 그러고 보니 비가 언제 왔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입니다. 봄 가뭄인가요? 밭도 갈고 써레질도 하고 모내기 준비도 한창 해야 할 시기여서 도랑으로 흘러가는 물이 많이 필요할 때인데 말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정신 팔려 잊고 지내는 것이 한둘이 아닌 것 같습니다.


도랑에 물이 흐르고 물길을 논으로 돌려 물이 가득한 논에 누렁이가 써레질을 하는 그런 농촌 풍경이 이 봄의 진정한 모습일 텐데 --- 논둑 옆으로 짙푸른 녹색 냉이와 쑥이 자라고 흰색 민들레와 자주색 제비꽃도 볼 수 있고 저 멀리 산 아래에 있는 할아버지 묘 옆에 피어있는 할미꽃조차도 고개를 들고 있는 그런 풍경이 봄을 차지하고 있는 향수의 모습입니다.

회색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봄의 색이자 풍경일 겁니다. 도심에서야 인위적으로 심어놓은 목련과 벚나무와 개나리와 라일락을 통해서 봄의 색을 알 수 있지만 인간의 힘이 가공한 인위적 모습입니다. 농촌의 봄의 색은 자연이 피워내는 색으로 스스로 채화를 합니다. 사람이 그려낼 수 없는 그 묘한 힘이 있습니다. 사진으로 아무리 찍어봐야 표현해 낼 수 없어 그저 바라보고 머리에 담아야만 그 색채를 알 수 있는 그런 것입니다.


회색의 도시에 살지만 회색 속에서나마 자연의 색을 찾고 바꿔야 할 텐데요. 오늘 아침 분위기는 다소 스산하지만 이 분위기가 색깔을 더욱 색깔답게 하기도 합니다. 아파트 뜰의 흰 목련을 더욱 희어 보이게 하고 초록의 잎이 많이 난 담장의 개나리를 더욱 노랗게 보이게 합니다.


시각중추로 감지되는 색깔은 모두 빛의 반사 때문이지만 우리는 보이는 색깔이 그 물체의 고유의 색상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일견 뒤집으면 같은 의미의 다른 해석일 수 있으나 흰색으로 보이는 것은 그 대상이 모든 색을 반사하기 때문이고 노랗게 보이는 것은 노란색을 흡수하지 못하고 반사하기 때문이며 빨간색 역시 그 대상이 빨간색만을 흡수하지 못하고 되내놓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으로 색을 들여다보면 보이는 색의 프리즘이 더욱 다양해지고 화려해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분광학을 발전시킨 뉴톤이 무지개를 죽여버렸다"는 비판을 받는 것처럼 시상을 덮어버리기도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분위기에 짓눌린 서울의 봄이 기를 못 펴고 있지만 남녘의 산하를 뒤덮고 있을 흰색의 향연을 떠올려봅니다. 꽃잎 비 내리는 도로를 따라 무릉도원의 비경도 엿봅니다. 색의 잔치는 화려해야만 돋보이는 게 아닙니다. 반전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밤에는 반짝이는 별빛 하나가 황홀하듯이 무채색의 긴 터널을 지나오다 갑자기 만난 흰색의 반전이 더욱 화사하게 보입니다. 붉은색, 초록색보다 오히려 더욱 색답게 하는 게 흰색입니다. 아이러니입니다.

흰색은 색이 없는 상태로도 표현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런 현상을 말입니다. 모든 색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사하고 나니 빈 상태, 그래서 흰 공백, 흰색의 진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태가 가장 화사함을 표현할 수 도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색도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 색깔을 달리 보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콘트라스트 미학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봄의 흰색은 바로 겨울의 무채색에서 벗어나 다채로움으로 오는 경계를 그어주는 색이 아닌가 합니다. 운동장에 흰 석회가루로 달리기 금을 표시하여 경계를 구획 짓듯이 말입니다. 흰색은 볼 수 있을 때 보고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합니다. 바로 초록과 노랑과 빨강에 묻혀 버리는 색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색과도 조화를 이룰 수 있기에 금방 희석되어 버립니다. 흰색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계절에 있어 행운입니다. 봄을 맞이하는 색입니다. 매화, 벚꽃, 목련이 대변합니다.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핀 목련꽃은 붉은색으로 산화되어 대지로 내려오고 그 자리를 이미 초록색 잎에게 양보하고 있습니다.

벌써 흰색이 대지로 내려오고 있는 현상은 봄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자연의 신호일까요?


온 듯했는데 지나가 버리는 것이 봄이라고 했지만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기억의 저장고에 2020년의 봄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닌 흰색으로 채색된 자연의 모습으로 덮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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