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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28. 2022

몸보다 말로 해라

주먹이 법보다 가깝다. 귀싸대기를 한 대 올려붙이고 이단 옆차기로 질러 버리고 싶다. 그러면 속이 개운해질 것 같다. 그렇다는 거다. 그러지도 못할 거면서 말이다. 속으로 부글부글 끓기만 한다.


이렇게 불쑥불쑥 들불처럼 번지는 감정의 발화점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공간성이 없다. 보는 순간, 듣는 순간, 즉각적으로 감정이 반등한다. 얼굴 표정으로, 몸짓으로, 말로, 행동으로 말이다. 감정은 '내 안의 상태'다. 감정 표출의 90%는 비언어적 표현이고 나머지 10% 정도가 언어적으로 드러난다.


이 매일매일의 '감정의 상태'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감정은 순간순간의 연속이기에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놓는 것이 중요하다. "삶에 만족하고 있는가?" "오늘 아침 기분은 어떤가?" 등등을 자문하는 것도 감정을 통제하기 위한 물음이다. 심지어 "지금 밖이 추워?"라고 묻는 것도 날씨에 따라 옷의 무게를 결정해서 내 감정을 따뜻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감정은 범위를 가지고 있다. 부자로 살아도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고 노숙자로 살아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도 있다. 어떤 경계로 감정의 스펙트럼을 가져가느냐가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고 나아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


순간순간 변하는 감정의 방향을 통제하는데 많은 노력을 한다. 감정을 방치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어떻게든 제어하고 통제하고 조절하려고 한다. 감정에는 사회적 정서까지 담기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철학적 종교적 접근으로 감정을 통제하는데 주력해왔다. 그럼에도 쉽사리 통제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감정은 기술적인 문제임에도 기술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이다.('감정의 발견' - 마크 브래킷 Marc Brackett) 감정을 기술로 보면 의도적으로 훈련해야 하고 효율성을 따져야 하고 계획적으로 평가하고 피드백을 해야 하는 것으로 바뀐다. 감정을 제어하려고만 했지 훈련하려고 해 본 적이 없다. 

감정이 리얼하게 전달되는 것이 대화다. 감정이 녹아있는 대화에 기술이 필요한 것은 당연함에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대화는 반드시 얻는 것이 있기에 한다.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당장 글을 쓰기 위해 종이와 연필이 필요하던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라던지 등등 상대방에게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대화를 한다. 아무 목적도 없이 말을 걸진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말하기 전에 표정으로 알아차려 버린다. 특히나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말을 하지 않아도 행동과 표정만 보고도 상대방이 지금 어떤 감정 상태인지 귀신같이 간파한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기에, 그렇게 생활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유효하게 작동했기에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어 버렸던 것이다. 말로 표현해야 하는 상황까지도 그저 표정으로 행동으로 다 알아차렸다고 착각을 했던 것이다.


진정한 감정은 말로 해야 한다. 감정의 전달은 정확성이 생명이다. 몸의 행동으로도 눈치챌 수 있지만 그것은 눈치일 뿐이다. 섬세하고 중요하고 정확히 전달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언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 오해가 없다. 상대방의 감정과 자기의 감정 사이의 물리적 공간을 좁힐 수 있는 최대의 무기가 대화다. 언어가 생각이고 생각이 곧 말이자 감정이기에 그렇다. 입 다물고 있으면 정확성이 떨어진다. 추측을 할 뿐이다. 오해의 시작이다.


행동은 감정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행동을 촉발한 원인과 상황을 추적하면 감정을 제어할 수 있다. 감정이 조절되면 삶의 질이 향상된다. 대화에서 감정조절을 잘못하면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다. 대화는 상대방이 이기도록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 쉽지 않다. 대화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기본 심리는 쾌락 중추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나를 드러내고 나를 어필하는 것이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치부조차 말하는 것을 통해 쾌감을 느낀다. 자학의 대화도 쾌감을 준다면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말하고 싶어 하는 종이다. 말을 통해 정확한 감정 표현이 가능했기에 그렇다. 하지만 말을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가루는 채에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라고 했다. 내 말을 멈추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여 경청하는 기술이 '감정의 달인'이 되는 방법이다. 대화는 내가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상대방이 계속 말하게 하는 게임이다. 대화는 감정 전달의 현장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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