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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03. 2022

달빛은 연못에 비추일 뿐

우리는 왜 공부를 하고 고전을 읽는가?


온고지신(溫故知新 ;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것을 앎)하고자 함이다. 공부의 원천도 인류가 발견하고 만들어낸 지식을 바탕으로 한다. 호모 사피엔스 기억의 회로다. 과거의 기억을 거쳐오지 않고서는 새로운 기억으로 각인되지 않는다. 과거는 지식의 축척이자 새로운 창의성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인본을 향한 철학과 사상은 2,500여 년 전 동서양의 성자들이 설파했던 내용에서 더 진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류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는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하여 동양의 공자, 맹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활동했던 기원전 생각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예수와 석가모니의 고뇌와 사랑도 초월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인류 지성의 끝판왕처럼 존엄의 서판이 되어 있다. 2,000년이 넘는 장구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인간의 생각은 정체되어 있는 것일까?


인간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당시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것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근본이 같기에 인간을 정의하고 개념을 내리는 것이 다를 수 없다. 2,000년 전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삶에 대한 문제, 사람에 대한 관계 등등은 이미 2,000년 전부터 반복되어왔다. 내가 지금 하는 고민을 이미 과거에 누군가가 고민했던 사안이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새로운 것으로 다가와 삶의 무게로 자리하지만 2,000년 전 그 누군가도 이미 같은 고민을 했고 좌절하거나 희망을 품었을 것이 분명하다. 지리적으로 단절되고 고뇌의 무게를 표현해서 저장할 수단이 없었고 사라져 전해지지 않았을 뿐이고, 있다고 해도 현세의 나에게 전달되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그 과거의 역사에 대해 관심 갖지 않았고 게을렀기에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딘가 어느 도서관 어느 서고에는 반드시 선인들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내놨던 기록들이 있을 것이다. 찾지 못하고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 있는지 모를 뿐이다. 어디 있는지 모르기에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봐야 한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고 있다'는 자각을 해야 한다. 그래야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화들짝 주변을 살피게 된다.

대교약졸(大巧若拙 ; 뛰어난 솜씨는 어리숙해 보인다)이라고 했다. 유홍준 교수가 추사 김정희의 봉은사 현판 '판전'글씨를 보고 평한 문구이기도 하다. 추사 김정희가 71세 때 돌아가 시 전에 마지막으로 쓴 글씨다. 유홍준 교수는 이 글씨를 보고 "아주 어린애 글씨처럼 보였다. 추사가 여덟 살 때 부친에게 보낸 편지 글씨와 대단히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은 그렇게 원초로 돌아가는 것인가"하고 평했다. 기교는 이렇게 처음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고전을 들여다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수 있다.


고전의 바다에 뛰어들어, 지금의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선인들을 찾아뵐 일이다. 밥 먹고 똥 싸고 자는 행위는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을 터다. 그 바탕 위에서 생각을 펴내는 일이니 그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되물어보자.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데 관심이 있을 수 도 있고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 없이 직장생활을 할 것인지가 관심일 수 있으며 여행을 하고 싶은 욕망이 지배하고 있을 수 도 있다. 어떠한 것이 되었든 나보다 먼저 고민하고 관심 가졌던 기록이 반드시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혼자 끙끙거릴 것이 아니라 찾아보면 이미 고민한 선인의 실마리를 움켜쥘 수가 있다. 시간을 절약하는 길이다. 해결책을 제시하고 사례를 보여주는데 그 길을 몰라 혼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찾지 않고 묻지 않았기에 길이 안보였을 뿐이다. 묻고 찾으면 반드시 어딘가에 숨어져 있던 길이 열리고 보일 것이다. 인간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직은 같은 모습이고 같은 행위를 하는 같은 종이기 때문이다. 더 나은 종으로 진화하기에는 2,000여 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기 전에 멸절할 가능성이 더 크지만 그래도 도광양회(蹈光養晦 ;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의 끈기로 정진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공부를 함에 있어 "죽영소계진부동(竹影掃階塵不動) 월륜천소수무흔(月輪穿沼水無痕) ; 대나무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는 일지 않고, 달빛이 연못을 꿰뚫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네"라는 정중동의 처세를 해야 한다. 어설픈 지식은 칼이 되어 몸을 벨 수 있음을 명심하는 것도 과거의 선인들을 통해 배울 일이다. 선인들의 지혜에 넙죽 절이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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