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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04. 2022

보면 있는 것이고 안 보면 없는 것이다

'본다'는 행위는 냉혹한 현실이다.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삼는 행위가 '본다'는 것이다. 증거를 눈앞에 내놔야 믿는다. 눈이 진실의 창이다. 보여줘야 믿는다. 참 단순하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게 다 가 아닌데 말이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세상은 딱 내 시선이 머무는 거리의 공간에 놓인 사물만을 인지할 뿐이다. 내 시선 밖의 세상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보이지 않기에 그것은 관심 밖의 존재로 치부되어 버린다.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다고 취급한다.


그래서 '본다'는 행위는 생각을 지배하는 제1 요소다. 외부 환경 변화를 감시하는 오감 중에서 안전을 지키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촉감으로 위험이 닿기 전에 회피할 수 있다. 냄새나 맛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것보다 효율성이 뛰어나다. 위험 회피로써의 역할뿐만 아니라 좋은 것을 찾는 접근의 역할로도 탁월하다. 좋아하는 대상을 어느 감각기관보다 월등하게 찾아낼 수 있다.


'본다'는 행위는 감정의 시작과 끝을 쥐고 있기도 한다. 진화적으로 중생대 시절,  맹수들의 위협으로부터 밤의 세계로 도피했던 포유류들의 운명은 청각을 더 예민하게 발달시켰지만 7,500만 년 전 운석 충돌로 인한 대형 포식자들의 멸절로 인해 낮의 세계로 나오면서 급격히 시각을 현실에 적응시킨 결과다. 대부분 동물들은 청각이면 청각, 시각이면 시각 등 어느 특정한 감각만을 유독 발달시켜 생존에 활용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오감을 종합하여 감정을 만들어내어 생존에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언어와 글의 활용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소통의 매개인 글도 전적으로 '본다'는 행위를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도 청각 지배적인 동물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 공포 스릴러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하고 영화를 보면 공포 영화가 별로 무섭지 않게 느껴진다. 공포는 소리가 있어야 배가된다.

이 공포(恐怖 ; 두렵고 무서움)조차 보는 행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느끼는 감도가 다르다. 공포는 대상이 있어야 느낀다. 대상이 없을 때 느끼는 불안(不安 ; 걱정이 되어 마음이 편하지 않음)과는 다르다. 공포는 대상이 있지만 언제 어느 때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다. 대상을 보고 회피하거나 상대를 제거하고 나면 공포는 사라진다. 반면에 불안은 보이지 않는 공포다. 대상이 없이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의 공포다. 그래서 불안은 없애기기 어렵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는 것으로부터의 회피', 생존 본능이다. 안 보이면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가장 쉬운 자기 합리화다. 못 봤다고 잡아떼면 된다. 외면이다. 굳이 봐서 사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돌린다. 특히나 안 좋은 일에 증인이 되기를 꺼려한다. 그래서 선택적 안경 쓰기가 등장한다. 같은 장소에 있었음에도 상황 진술이 제각각인 경우를 볼 수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으로 시선이 작동한다. 눈에 보이는 데로 보는 것 같지만 보고 싶은 것만 취사선택하여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사실과 마주한다는 '보는 행위'에도 이렇게 차원이 존재한다. 그냥 보이는 게 다 가 아니라라는 소리다. 보이는 현상에 감정이 담기고 생각이 담겨야 '봤다'라고 표현된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봤다'라고 표현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다. '본다'는 행위는 의미를 담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눈만 돌리면 보일 것 같지만 심미안을 갖추어야 제대로 보인다. 단풍도 내 마음의 감정에 물이 들어야 보이는 것과 같다. 감정이 메말라 있으면 단풍의 색깔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저 추울 뿐이고 그저 쓸어내기 귀찮은 낙엽일 뿐이다.


세상을 본다는 행위는 염염요여임전일(念念要如臨戰日 ; 생각은 싸움터에 나가는 것처럼 비장하게)하고 심심상사과교시(心心常似過橋時 ; 마음은 다리를 건너듯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것과 같다. 본다는 행위의 엄중함을 새겨 좋은 것, 올바른 것을 보는 자세를 견지해야할터다. 세상이 하 수상하고 어지러우니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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