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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07. 2022

내용보다 형식이 먼저다

무언가를 배운다고 하는데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진도도 제대로 안 나가고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며 나중에 설명하라고 하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많은 시간을 들여 달달 외울 정도로 했건만 책을 덮고 나면 백지와 똑같아진다. 머리가 나쁘다고 자책하게 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예전에 자식의 능력을 바라보는 부모 심정의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유치원 입학하기 전에는 자기 자식이 하는 언행을 보면 천재인 줄 알고 아인슈타인 우유를 먹이다가 얘가 유치원에 가서 하는 행동을 보고는 '그래 서울대 정도는 가야지' 하면서 서울우유를,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연세우유, 중학교 가면 건국우유, 고등학교 가면 매일우유나 아무 우유나 먹고 건강하기만 해라"라고 한다는 웃픈 이야기다.


나이 들어 공부를 하는데 제대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때는 무엇이 문제인지 한번 되물어야 한다. 나이 들어 외워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합리화는 접어두고 방법론을 들여다봐야 한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타고난 머리와 어려서 노출된 공부 환경, 그리고 개인적 노력에 따라 천차만별이기에 일반적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말하는 노력에 방법을 잘 찾으면 훨씬 수월하게 목표에 다가갈 수도 있다.


공부 방법에 있어 내용을 숙지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내용은 무궁무진하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내용은 결과이기에 속기 쉽다. 과학적 접근과 사고를 하는 데 있어서도 이 내용에 천착하여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로이트의 꿈에 대한 해석이다. 프로이트는 꿈의 내용을 해석하는데 집중함으로써 꿈과 기억과 생각의 기재를 잘못 가게 했다. 꿈을 연구한 앨런 홈슨(Allan Hobson)은 "프로이트는 50%는 맞고 100% 틀렸다"라고 까지 혹평하고 있다. 20명의 사람들에게 꿈을 꾼 내용을 종이에 적어내게 하고 그 종이를 반으로 잘라 40개를 만들어 무작위로 섞은 다음에 아무 종이나 맞추어 읽어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꿈에는 왜 가만있지 않고 움직이는 동작만 있는지, 냄새 맡는 꿈은 왜 못 꾸는지 등등 꿈의 공통점이라는 형식을 들여다봤다면 과학이 100년은 앞서 갔을 거라고 지적하고 있다. 프로이트로 인하여 수많은 해몽가와 역술가가 등장해 상상의 추론들을 쏟아냈다. 꿈은 해몽의 대상이 아님에도 내용만을 봤기에 그럴 것이다는 해설을 그럴듯하게 붙여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그것이 위안이 되고 예견이 되고 두려움이 되기도 했다. 접근을 잘못하면 방향 자체가 틀어져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간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다.

내용을 보기보다는 형식을 봐야 한다. 형식은 일정한 절차, 방식이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양을 찾는 일이다. 패턴을 찾는 일이고 패턴을 범주화하는 일이다. 뼈대를 세우면 살을 얼마나 붙일 것인지는 쉽게 할 수 있다. 수많은 응용을 할 수 도 있다. 내용은 바로 이 응용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 형식을 보지 못했기에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판판히 좌절하고 포기하게 된다. 공부하는데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기초가 바로 형식을 세우고 찾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공부 과정은 빨리빨리 결과물을 내야 했기에 내용의 정답을 찾는 일에 주력했다. 만 인 만 색의 다양성을 갖고 있어 각자의 장기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과정일 텐데 줄 세우기 교육 과정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은 자식 세대에게도 줄 세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경험을 자식 세대에 그대로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으니 그 안에서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학원도 보내 선행학습도 시키야 앞서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야 겨우 대학에 갈 기회라도 잡을 수 있고 더 좋은 대학을 나와야 그나마 나은 직장에 취직을 할 것이라는 시계열적 성공 계단의 틀을 만들어 놓고 따라가도록 했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고 살아남는 길이라 여겼다.


하지만 세상의 판이 바뀌었다. 내용은 수많은 사례의 일부분일 뿐이다. 변하지 않는 형식의 틀이 각각의 영역에 숨겨져 있다 하나 둘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형식을 알아야 응용이 가능하고 빨리 적응할 수 있다. 틀을 세우지 못하면 벽돌 한 장 쌓을 수 없고 형식과 틀 없이 쌓은 벽돌은 높이 올릴 수 조차 없다.


무엇을 잘못 접근하고 있는지 빨리 알아채는 것, 그래서 방향을 다시 잡고 기초를 다지는 일, 그 과정에 형식을 찾아내 범주화하는 일이며, 용어를 알고 개념을 알면 의미와 이해는 따라온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다. 책을 다시 펼쳐 천천히 집중해 요점을 찾아내고 문장을 찾아 정리하여 별책부록처럼 나만의 형식으로 재조합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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