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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16. 2022

국가주의 한계와 월드컵의 경계

어제를 기점으로 전 세계 인구가 80억 명을 넘었다는 유엔 발표가 있었다. 2010년에 70억 명을 넘었으니 12년 만에 10억 명이 늘었다. 이런 추세로라면 2037년에 90억 명, 2058년에 100억 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인구가 늘고 있는 나라가 아시아 및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는 중국으로 14억 2,500만 명이며 그다음이 인도로 14억 1,700만 명이다. 내년이면 인도가 중국 인구수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숫자의 크기가 커질수록 식량난 및 기후변화 위기가 무관하지 않다는 경고가 섬뜩하다.


그럼 이 80억 명의 인류가 먹고사는데 문제없고 잠자는데 문제없이 살고 있을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이 지구촌 곳곳에서는 국지전을 치르고 있고 종교 갈등으로 인한 살육도 벌어지며 테러와 복수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곳도 있다. 심지어 먹고살기조차 급급해 싸울 힘조차 없는 나라도 있다. 민족국가 형태로 세계가 재편되어온 부작용의 현실이자, 지구 표층에 선을 그어놓고 자기 영역임을 주장하는 행태의 모순이며 자기 민족만 잘 살 수 있으면 된다는 이기심의 발로다.


민족국가를 부추기는 월드컵도 다음 주부터 개최되어 국가주의에 불을 댕길 것이다. 총과 칼이 아니고 축구공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204개나 되는 전 세계 국가 중에 32개국만 본선 무대에 올라 전쟁에 버금가는 열기로 그라운드가 후끈해질 테지만 말이다.


지행상방 분복하비(志行上方 分福下比 ; 뜻과 행동은 나보다 나은 사람과 견주고, 분수와 복은 나보다 못하 사람과 비교하라)라 했건만 국가주의가 팽배한 현실에서는 언감생심이다. 상생보다는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대상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에너지와 식량은 점점 더 폐쇄적이 되어 힘의 균형추를 움직이는 무기가 되고 있다. 기후위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인구증가로 인해 인류가 자초한 현상임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화석연료를 사용해 선진국이 된 나라들이 똑같이 책임을 지자고 들고 나오고 후발국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다. 당장 닥친 추위를 버텨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는 나라들은 화석연료 발전소 재가동에 들어갔다. 지금 당장은 살지 모르지만 모두가 같이 죽자는 배수진이지만 어쩔 수 없다. 같이 수렁으로 들어가는 형국이다.

지구 상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역치(閾値, threshold)를 넘어서는 순간, 지구 표층의 생명체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 역치의 순간이 오도록 오염을 쌓아가고 있는 인간은 지구 생명에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엄포를 놓은 나라들도 있다. 선제공격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면 자기는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전쟁에서는 이길지 모르지만 아무 의미 없는 승리다. 곧 핵무기 사용의 여파가 자기의 폐와 심장으로 되돌아올 것을 간과한 것이다.


전 세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현실에서는 지구 반대편의 사건이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 내 나라의 일로 스며든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내 주변에서부터 시작하여 내가 모르는 사람과 국가까지도 무시하면 안 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 정세의 현실은 자국 중심 관점과 편 가르기 식으로 세력을 나누어가고 있다. 줄을 잘 서고 눈치를 잘 봐야 한다. 힘이 약한 놈은 센 놈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요리조리 줄타기를 교묘히 잘할 수 도 있겠지만 쉽지 않다. 서로 줄을 흔들어 떨어뜨리려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무시 못한 비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그 어느 나라도 무시 못할 비장의 카드가 있는가? 아무리 둘러봐도 마땅한 카드가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줄이라도 잘 서야 한다. 월드컵 예선에서 싸울 조추첨 상대를 뽑듯이 잘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힘들지만 16강도 바라볼 수 있고 조금 더 운이 좋으면 8강도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기는 수준이 아니고 버텨내려고만 해도 힘이 필요하다. 월드컵팀에 손흥민이 필요하고 김민재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월드컵 기간 동안은 나뉘었던 민심이 하나가 될 것이다. 좌우를 떠나고 보수와 진보를 떠나 둥근 축구공의 궤적처럼 구분이 없어질 것이다. 이기면 서로 환호하고 설령 지더라도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를 할 것이다. 2002년을 또렷이 기억하는 것처럼 2022년도도 국민들의 가슴속에 각인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때 나도 거기에 있었다"는 회상으로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80억 명 중, 5,200만 명 대한민국의 현재가 잠시 하나 되어 보듬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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