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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17. 2022

문은 경계이자 통로다

오늘도 무수히 많은 경계를 넘어 다닌다. 문을 지나온 것이다. 문은 경계와 경계를 연결하고 이어주는 통로다. 문은 안과 밖을 이어주고 담과 벽으로 막아놓은 공간을 뚫어 하나 되게 하는 도구다. 창문도 공간의 경계를 나누는 도구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느냐의 엄중한 잣대가 적용된다. 창문을 넘으면 도둑이지만 문으로 들어서면 손님이다. 문이 닫혀 있으면 벽이 되지만 열려있으면 소통이 된다. 그래서 문은 상징과 메타포의 대명사다.


오죽하면 지브롤터 해협의 양안을 '헤라클레스의 문'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대서양과 지중해의 경계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제'중 열 번째 스토리를 가져다 입혔다. 헤라클레스가 에리테이아 섬에 살고 있는 괴물 게리온의 소를 끌고 오는 과정에 아프리카와 스페인의 경계를 가로막고 있는 산맥을 돌로 내리쳐 갈라 대서양 바닷물이 지중해로 들어오게 하고, 양쪽에 기둥을 세우고 배를 타고 건너가 소를 끌고 왔다는 신화다.

이 헤라클레스 기둥에는 "Non Plus Ultra(더 나아갈 수 없다)"라는 표상이 있다. 고대인들에게 지브롤터 해협의 끝은 세계의 끝을 의미했다. 지중해에서 이 헤라클레스 기둥 너머 대서양으로 항해를 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다. 경계를 나누는 문의 메타포로 헤라클레스를 가져다 붙인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의 군주였던 카를 5세는 이 표상에서 Non을 떼어내고 'Plus Ultra (보다 멀리 나아가라)'를 국가 모토로 삼았고 현재 스페인 국기에도 새겨져 있다. 경계를 상징하던 문에서 국가의 상징으로 까지 메타포는 진화를 한다.


현재의 우리는 어떤가? 문을 어느 방향으로 열고 들어가고 또한 나갔는가? 무심코 문을 열고 닫고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문을 열고 닫았는지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사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냥 몸에 체화되어 반사적으로 문을 당기거나 민다. 출입문에 붙여놓은 PULL과 PUSH가 헷갈려 밀어야 하나 당겨야 하나 주춤거릴 때도 있지만 말이다.


이 문을 밀고 당기는 방향에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단순한 행위일 것 같지만 그 행위에 문화가 담겨있다.


사실 문을 여닫는 방향은 우리나라의 경우, 건축법으로도 규제를 하고 있다. 생소하겠지만 사실이다. 바로 건축물의 피난 및 방화 기준에 대한 규정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닫는 방향을 정하는 큰 기준으로는 '피난'과 '프라이버시 보호'다. 재난 상황에 닥쳐 피난을 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문을 밀치고 나간다. 그래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설의 출입문은 모두 바깥으로 여는 '바깥 여닫이문'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문은 사생활을 보호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방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려고 할 때 몸 안쪽으로 문을 당기는 '안 여닫이문'을 사용한다. 방문을 바깥으로 열면 안쪽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안쪽으로 열면 문 뒤로 몸을 감출 수도 있다. 화장실 문도 대표적인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안 여닫이문'이다. 하지만 환자가 있는 집에서는 화장실 문을 바깥으로 열리는 구조로 바꾸거나 옆으로 미는 미닫이문으로 바꾸기를 권장한다. 환자가 화장실에서 쓰러졌을 때 문을 화장실 안쪽으로 열면 문이 열리는 공간에 끼어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은행의 경우 출입문은 반드시 안쪽으로 열게 되어 있다. '보안'목적이다. 은행강도가 도망칠 때 문을 안쪽으로 열게 해 놓으면 바깥으로 열고 도망칠 때보다 찰나의 시간이나마 잡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문의 기능적 관점에서 열고 닫는 방향이 정해지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문은 공간 활용 측면에서 결정된다. 아파트의 경우 정해진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문의 방향이 정해진다. 우리나라 아파트 현관문의 경우 모두 바깥쪽으로 열게 되어 있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가는 주거문화로 인하여 현관문을 안쪽으로 열면 공간에 제한을 받게 된다. 아파트뿐만이 아니고 대부분의 단독주택 현관문도 바깥쪽으로 열게 설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에 미국이나 유럽 등 에서는 대부분 주택의 현관문이 안쪽으로 열리게 되어 있다. 프라이버시와 보안의 개념이 강한 설계로 읽힌다.


하지만 마당이 있고 마당으로 들어오는 대문이 있는 우리나라의 옛 한옥의 경우는 대문들이 모두 안쪽으로 열리게 되어 있다. 주거문화의 본질과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방향이다. 바로 대문은 손님을 맞이하는 첫 관문이기 때문이다. 배려다. 대문을 활짝 열어 환대하는 장소다. 손님이 계신 바깥으로 대문을 열어 손님이 옆으로 피하게 하는 실례를 범하지 않기 위함이다. 한옥의 대문은 보안의 목적보다는 배려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10여 개가 넘는 문을 여닫았다. 심지어 자동으로 열리는 전철 미닫이 문과 회사 건물의 리볼빙 도어까지 지나왔고 아이디카드를 찍어야 열리는 사무실 미닫이문도 거쳐왔다. 수많은 문을 지나 다른 경계로 넘어온 것이다. 물리적 공간의 나눔을 뛰어넘어 plus ultra, 이상을 향하여 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는 여유의 경계까지도 함께 건너가야 한다. 문은 소통의 통로이기에 활짝 열어야 한다. 찬바람 들어와 정신을 맑게 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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