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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15. 2022

보졸레 누보 시간이 왔다

와인의 파수꾼, 부숑(Bouchon)

이틀 뒤인 17일이면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이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에 프랑스산 햇 와인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가 전 세계에 동시에 출시되기 때문이다. 와인 맛도 개인별 취향이라 어떤 것이 더 맛있고 좋다고 '맛의 폭력'을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하고 마시면 그런 맛으로 느껴지는' 묘한 프라시보 효과와 와인업자들의 교묘한 마케팅이 더해져 보졸레 누보가 연말 크리스마스 파티 와인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보졸레 누보 와인을 많이 수입하는 국가다. 국내에는 20여 년 전부터 수입업자들의 대대적인 홍보 선전 덕으로 구매할 수 없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오더니 근래에는 시들해졌었다. 그러다 코로나 19로 모임을 못하고 집에서 혼술 하는데 와인이 혁혁한 공헌(?)을 세우다가 올 연말부터는 모임이 가능해지자 다시 보졸레 누보에 대한 관심이 쏠리는 듯하다. 올해 수입되는 보졸레 누보 1병 판매 가격은 2만6,000원 ~ 3만5,000원대로 책정된 모양이다. 올해는 프랑스 지역이 무더위와 가뭄으로 포도 수확이 예년보다 한 달 앞당겨져 생산량이 적고 환율 및 고유가로 인한 유통단가도 높아져 전체적으로 수입단가가 비싸진 형국이다. 프랑스에서는 750ml 1병에 5,000원 정도면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보졸레 누보 와인은 그해 9월 정도 수확한 햇 포도 알갱이를 그대로 담아 4-6주 정도만 숙성 발효하여 출시하므로 맛이 가볍다고들 한다. 연말 모임에 분위기를 돋우는 데는 제격이라 할 수 있다. 


와인은 여러 번 정제 과정을 거치고 숙성되는 과정에서 오크통이나 스테인리스 통 등에 담기게 되는데 이 숙성통의 재질과 기간, 방법 등에 따라 맛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탄닌의 농도로 줄어들고 더불어 맛과 향과 와인의 색상까지도 한꺼플씩 벗기도 하고 덧입게도 된다. 이렇게 자연이 만들어내는 와인의 미묘한 변화를 체크하고 관리하여 병에 담음으로써 한병의 와인으로 탄생을 한다. 한해의 햇살의 강도와 대지의 에너지가 오롯이 한병의 와인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인간은 그 자연의 에너지를 흩어지지 않도록 관리를 하여 맛으로 향으로 색으로 풀어놓는 역할을 한다. 자연도 대단하지만 그 에너지를 가둘 줄 아는 인간도 대단하다.

그렇게 병에 와인을 담았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병에 담긴 와인도 계속 숨을 쉬고 살아 있다. 미묘한 그 변화를 최소화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병의 입을 막고 있는 코르크 마개 부숑(Bouchon)이다.


부숑은 와인의 최종 맛과 향과 색깔을 가두고 지키는 파수꾼이다. 이 부숑에 불량 코르크를 사용하면 코르크 마개 오염에 의해 와인의 풍미가 변질되는 부쇼네(Bouchonne) 현상이 나타난다. 와인을 보관할 때 높은 온도에서 잘못 저장했을 때 생기는 열화현상으로 인한 변질과는 또 다른 현상이다. 와인을 시음할 때 항상 호스트가 첫맛을 음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맛과 향의 배가를 위해 디켄딩을 하여 공기와 접촉을 시키고 첫 잔을 따를 때만 들리는 똘~똘~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숑을 스크루로 돌리고 뽕하는 소리를 들어야 가능한 후순위 즐거움이다. 부숑은 와인의 맛을 가두고 바깥 세계와 차단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외부와 단절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미세하게 공기를 통과시켜 맛과 향이 계속 살아있게 한다.


부숑은 디오니소스(Dionysus)다. 긴장을 풀어지게 하고 맨 정신일 때보다 차분해지게 하기도 하고 자신감에 넘쳐 용감해지기도 하며 황홀감에 흥분하게도 한다. 하지만 선을 넘는 순간, 차분이 흥분이 되고 용감이 만용이 되고 황홀감이 비극으로 변한다. 경계의 병목을 쥐고 있는 것이 부숑이다. 부숑을 제거할 스크루를 손에 들고 있는 자만이 와인의 맛과 향을 음미할 수 있다. 과음하지 않고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부숑에 와인 오프너를 들이댈 자격이 있다. 모임이 많아지는 연말이 다가온다. 보졸레 누보 한 잔으로도 2시간 이상 떠들 수 있는 내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와인은 목적이 아니고 대화를 보조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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