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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23. 2022

관심 끌려다 망한 환경운동

"목적이 중요하면 어떤 수단이던 정당화될 수 있는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궤변으로 5.18 민주화운동의 학살 주범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던 검찰도 수단을 정당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국가 통치행위는 사법부의 법률적 판단의 대상으로는 적법하지 않아서 사법 심사권 범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논리로 공소권 없음의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이라 궤변의 방향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군사반란의 쿠데타를 목적 달성의 정당한 수단으로 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 중에 있었던 악행은 용서된다"는 논리로 읽혀, 권력에 충성하고 상황을 면피하려던 검찰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전형적인 아부형 멘트였다.


하지만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다 할지라도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 정당하지 못하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또한 그 행위를 하는 단체나 조직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행태는 근래 해외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명 명화들에 페인트가 뿌려지거나 훼손하는 '눈길 끌기 이벤트'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환경운동가들이 벌이는 기획 이벤트다. 한두 건이 아니고 최근 6개월여 사이에 무려 30회가 넘는 명화 훼손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5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네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케이크를 던져 훼손한 사건을 비롯하여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고흐의 '해바라기'에도 토마토소스를 뿌리는 만행을 자행했고

네덜란드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있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그림에도 순간접착제를 바른 손과 머리카락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해서 일반인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환경단체 활동가들의 타깃이 된 명화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 로마 보나파르테궁전 미술관에 전시된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 오스트리아 빈의 레오폴트 박물관에 있는 클림트의 '죽음과 삶', 호주 캔버라의 호주 국립미술관에 전시된 앤디 워홀의 '캠벨수프'그림도 대상이 되었다.


명화 훼손을 하고 있는 환경단체들은 "우리 사회의 사형선고라고 부르는 석유, 가스 시추 활동에 항의하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지구가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액자에 걸린 해바라기를 관람하는 동안 진짜 해바라기가 사라져 가고 있음에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이라며 자기들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어처구니가 없는 행위로 보인다. 환경위기와 명화 훼손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가?


환경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명화 훼손이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강렬하게 보이고자 하는 행위로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엉뚱한 관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이벤트를 기획할 때 흔히 실무자들이 빠져드는 늪 같은 외눈박이 몰입이다. 기획자들은 순간적으로 기발한 아이디어 같고 관심을 폭발적으로 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한발 더 나아가 그 이벤트와 행위들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토론이 있었다면 그런 무모한 행위로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환경운동가들의 명화 훼손 사건을 보고 그 행위로 인해 환경을 한번 더 생각하는 사람은 단연코 거의 없다. 일단 테러의 대상이 된 명화들은 사람들에게 한 번쯤은 보고 싶은 작품으로의 소중함이 내재되어 있다. 감히 그런 작품에 페인트를 붓고 토마토소스를 던진다는 행위는 그 위대한 유산을 다시 못 볼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변화되고 나아가 분노로 폭발한다. 휘발유 끼얹고 불로 뛰어든 형국이다. 환경운동가들의 판단 착오다.


명화 훼손이라는 폭력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폭력은 폭력일 뿐 환경위기의 경각심이 실릴 바늘구멍 하나 없다. 지금은 그림에 대한 폭력이지만 곧 사람에 대한 폭력으로 환경운동이 변질될 수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선다. 퍼포먼스를 자행한 환경운동가들은 그린피스처럼 행동으로 보여주는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생각하겠지만 어설픈 기획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환경운동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하는 악영향만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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