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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09. 2022

'찰나'를 보는 두 거장의 다른 시선

가수 최백호가 지난달 기획앨범 '찰나'를 내놓은 모양이다. 신문 지면 여러 곳에 인터뷰 기사들이 보인다. 올해 72세의 나이다. 1950년생으로 조용필과 같은 나이란다. 우연찮게도 조용필도 같은 시기에 같은 제목 '찰나'라는 곡을 내놓았다. 우연치고는 필연일까? 일흔의 나이가 되면 시간의 순간을 보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두 거장은 같은 '찰나'를 보는 눈이 달랐다. 각자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찰나를 본다. 각자의 매력과 칼라가 곡과 가사에 그대로 묻어 있다. 참으로 그러하다.


최백호가 부르는 '찰나'는 살아온 인생을 반추하는 스케일이 큰 발라드다. 반주도 오케스트라의 장중함이 지배한다. 반면 조용필의 '찰나'는 사랑의 순간을 잡아내 집중하는 락 버전이다. 


두 노년의 뮤지션들이 지나온 찰나의 순간들은 어떠했기에 이렇게 전혀 다른 차원의 순간들을 기억하고 그 기억들을 엮어 노래로 승화시켰을까?


찰나의 시간을 전하는 데는 곡의 리듬보다는 기사가 더욱 효과적 이리라. 최백호 '찰나'의 노랫말을 보자.


"처음 모든 게 두려웠던 날 / 한숨조차 힘겨웠던 날 / 이젠 아득히 떠나버린 / 그날들 날들이여 / 조금 세상에 익숙해지고 / 문득 뒤돌아 생각해 보면 / 두 번 다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날들이여 / 빛나는 순간 / 희미한 순간 / 그 모든 찰나들이 / 나의 삶을 가득히 수놓았음을 / 사랑과 이별은 / 늘 함께 있었으며 / 쥐려 할수록 / 새어나가던 욕심도 희미해라 / 빛나던 순간 / 희미한 순간 / 그 모든 찰나들이 / 나의 삶을 가득히 수놓았음을 / 지금 이 순간도 / 나의 빛나던 찰나여 / 이미 지나버린 찰나여 / 나의 영원한 찰나여 / 지금 빛나는 순간이여"


조용필의 '찰나' 가사도 보자.


"우리가 처음 마주친 순간 / 내게 들어온 떨림 / 그때는 뭔지 나는 몰랐어 / 햇살이 붉게 물드는 창밖 / 저녁노을의 끝에 / 자꾸만 걸려 너의 얼굴이 / 반짝이는 너 / 흐트러진 나 / 환상적인 흐름이야 / 어쩐지 워어 / 느낌이 달라 워어 / 눈뜨는 아침이 워어 / 이렇게 빛나 / 생각해 생각해 생각해 봐도 / 우리 마주치던 순간에 와 / 나는 분명하게 기억해 워어 / 결정적인  찰나 / 후우우 후우우 후우 / 반짝이던 찰나 / 후우우우 후우우우 후우 / 재미없기로 소문났었던 내가 썰렁한 말에 실없이 웃고 많이 들뜨네 / 봐봐 모두들 멋쩍은 눈빛 / 나조차 적응이 안돼 / 사람의 일은 알다 모르지 / 반짝이는 너 / 흐트러진 나 / 환상적인 흐름이야 / (중략) / 그렇게 빤히 날 바라다볼 때면 / 머릿속이 윙윙 진정해 진정해 진정해 / 지금 나는 어지러워 너무 어지러워 "


최백호는 인생의 찰나가 모이고 모인 연속의 순간으로 봤다. 최백호는 지면 인터뷰를 통해서도 "작지만 소중한, 짧지만 영원한 찰나들이 모여 우리 삶을 지탱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찰나의 순간들을 시계열적으로 연결하여 인생 전체의 사진첩으로 엮어냈다.


반면 조용필은 사랑의 한 순간만을 잡아챘다. 인생의 그 어떤 찰나일 때보다 가슴 떨리고 설레는 그 순간. 삶에서 가장 떠올리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순간의 현장을 포착했다. 이보다 더 뜨거운 순간이 어디 있겠는가?


순간을 표현하는 두 거장의 숨소리는 이렇게 다르지만 각각의 맛과 향을 지니고 있다. 

최백호의 청춘의 순간은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청춘은 아름답지만 그때로 꼭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 노랫말 행간에도 숨어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살면서 보니 난 70대가 된 게 참 좋다. 60대만 해도 가난한 옛날로 돌아갈까 봐 항상 불안하고 잡다한 생각이 많았는데 이젠 정리가 되고 편해졌다. 눈앞이 아닌 전체를 볼 줄 알게 됐다. 덕분에 80이 되면 더 좋은 노래를 쓸 거 같다. 그렇게 90대까지, 90대의 호흡으로 품위 있게 노래하고 싶다"라고 했다. 찰나가 거듭될 것임을 눈치채고 순응하는 모습이다. 인생을 바로 보고, 제대로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진 듯하다.


찰나(刹那)는 "아주 가는 명주실에 날카로운 칼을 대어 끊어지는데 필요한 짧은 시간"이라는 뜻이다. 눈 깜짝할 사이라는 순식간(瞬息間)보다도 짧은 시간으로 소수점 아래 18번째 자릿수에 해당한다. 사실 시간을 명명하는 모든 용어는 관념이다. 상징이고 물성이 된다. 의식의 현상성이다. 인간이 만든 의식의 현상성중 가장 파워풀한 것이 바로 시간이다. 


찰나는 순간순간의 단편도 중요하고 단편이 모인 찰나의 연속도 중요하다. 찰나를 모아 쌓여 삶의 성을 쌓은 최백호의 '찰나'가 내게는 더 절절히 다가온다. 오케스트라 대신 어쿠스틱 반주로 불렀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말이다.




ㅇ 최백호 '찰나' MV URL : https://www.youtube.com/watch?v=BmJ-s4IyAoo


ㅇ 조용필 '찰나' URL : https://www.youtube.com/watch?v=s0VOftMC-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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