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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12. 2022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

이번 연말에도 어김없이 국내 대학교수들이 설문조사에 참여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발표되었다. 올해는 과이불개(過而不改 ;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가 선정됐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박현모 여주대 교수는 "우리나라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혹은 대통령 탓이라고 말하고 고칠 생각을 않는다"며 "그러는 가운데 이태원 참사와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지려는 정치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과이불개는 논어 위령공편 28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과이불개(過而不改) 시위과의(是謂過矣) ;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이 바로 허물"이라고 했다. 논어 학이편에도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라 했다. 군자의 도에 있어 잘못을 인지했으면 바로 시정하고 고치는 것을 덕목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 과이불개가 2,500년을 돌아 2022년에 다시 환생한 이유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가 만연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판에서는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패배를 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모양이다. 역대 정치인치고 자기 잘못을 처음부터 순순히 시인하는 꼴을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일단은 "정치생명을 걸고 그런 일은 없었다 다"라고 방어막을 친다. 모든 것을 걸만큼 청렴하다는 것을 들이대 놓으면 "오죽 결백하면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옹호론이 잠시 득세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권한 내에서 한 것임"을 주장한다. 그리고는 곧 "법정에서 사실대로 말하겠다"로 바뀌고 수갑 차고 포토라인에 설 때쯤이면 "있지도 않은 사실을 덮어씌워 제거하려는 모함이다. 나는 결백하다"라고 항변한다. 그러고는 결국 깜빵으로 간다.


정치인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다. 소인배들과 돈에 눈먼 장사치들이 정치판에 득실거려서 그렇다. 동네에서 삥이나 뜯는 조폭이 더 어울리고 시장통 가판에서 허리춤에 전대 두르고 메이드 인 차이나를 목소리 높여  파는 게 더 어울리는 사람들이 정치판에 있어서 그렇다.


판에 맞는 사람을 키워야 하는데 우리나라 정치판은 사람을 키우는 곳이 아니고 사람을 죽이는 곳이다. 소신을 가지고 국민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고 감시하는 사람들이 발을 붙이고 살 수 없다. 정당의 분위기에 몰려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여의도 큰 집에 있는 사람 치고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인물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는가? 전부 가장 똑똑하고 말 잘하고 인물 출중한 사람들의 집합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렇게 삐걱거리고 기둥뿌리 뽑혀 폭망 하는 모습만을 보여준다는 것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그놈의 집에 들어있는 분위기가 문제인 듯하다.  그 물에 들어가면 사람이 오염되어 나온다. 배지를 다는 순간, 눈이 멀고 귀가 멀어버린다. 귀신 들린 집이 아닌 바에야 그럴 수가 있는가 말이다. 권력의 힘이 바로 귀신의 유혹임을 간과하는 탓이다.

제발 사람 잡는 정치는 그만두고 시스템을 살리는 정치를 해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큰 사건이 벌어지면 누가 잘못했는지 책임자 찾기에 바쁘다. 책임을 묻고 해당 직에서 쫓아내야 그 사건이 마무리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짓거리를 해방 이후 여태껏 하고 있다. 사건이 반복되고 반복되는 이유다.


책임자를 지목하고 쫓아내는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사람에게 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그런 사건이 일어난 과정 중에 시스템적으로 오류는 없었는지, 놓치고 있었던 것은 없는지, 그래서 개선해야 하고 시스템적으로 재정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아야 재발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다시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우린 책임을 뒤집어씌울 희양양 찾기가 더 급해 보인다. 책임자 처벌은 당장은 속이 시원한 것 같다. 빨리 희생양을 잡아서 시뻘건 피를 마구 뿌려야 사건이 종결되는 것 같다. 그러나 착각이자 오산이다. 겉으로 느끼는 개운함은 잠시 뿐이다. 내일이면 뿌려진 피가 썩어 피비린내 진동하는 시간 속으로 빠져들게 됨을 잠시 잊고 있을 뿐이다.


사람은 적재적소에 있어야 하고 그 판에 맞아야 한다. 사기와 거짓이 판을 치는 형국이 시정잡배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면 그 판은 깨는 게 맞다. 잘못을 했으면 인정하는 배포를 지닌 사람들로 다시 채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마다 돌아오는 어떤 때가 되면 망각의 빨간 약을 먹고 취해서 엉뚱한 선택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집값만 안 내리면 된다. 남들은 사기를 당하던 보이스피싱을 당하던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심사로 눈먼 도장을 찍는다. 그래도 사회가 굴러가고 국가가 운영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재수 좋은 국민임에 틀림없다. 과이불개 하지 않는 정치인이 득실득실 함에도 굴러가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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