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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13. 2022

진정한 소통과 공감이란?

현대인의 덕목으로 소통과 공감을 꼽는다.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공동체 사회에서 당연한 조건이다. 당연함에도 계속적으로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소리는 소통과 공감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잘 안돼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오히려 더 증폭되어 들리기 때문이다.


소통(疎通, communication)은 서로 막힘이 없이 잘 통한다는 것이고 공감(共感, empathy)은 다른 사람의 감정, 의견, 주장에 대해 나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이다. 공감은 상대방의 앞에 앉아서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게 아니고 상대의 옆에 앉아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방향성이 중요하다. I feel with you 가 공감이다. "내가 너의 이야기를 앞에서 듣는 게 아니라 너의 옆으로 가서 최대한 너의 관점에서 같이 생각하고 경험해줄게"가 공감(empathy)이다. 상대의 입장과 감정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는 것이다. sympathy도 공감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sympathy는 "당신이 좀 더 잘 됐으면 좋겠어" 정도에 해당하는 I feel for you 뉘앙스의 감정으로 상대방의 감정에 동화되는 상태다. Compassion도 공감의 표현으로 쓰이는데 I'm here to help 수준으로 같이 고통을 느끼고 나아가 실제 행동으로 같이 극복해 나가 줄게라는 강한 행동적 감정이 담겨있다.


공감은 감정이고 정서다. 자각을 하여 이름 붙여져 조절되는 과정을 거쳐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 언어를 통해 표현하지 않으면 공감되지 않는다. 각자의 머릿속에만 있는 공감은 각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각각의 공감을 초첨 맞게 이어주는 것이 언어이고 대화다. 언어는 자연에 없는 것에 물성을 부여하여 현현하게 하는 마법의 도구다. 그래서 한 솥 밥을 같이 먹는 게 중요하다. 어떤 환경에 같이 있느냐가 공통의 생각을 지배하고 같은 행동을 이끌어낸다. 이 환경은 모든 존재의 경계가 다른 만큼의 개수를 확률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할 확률은 반드시 그 이전 사건의 영향을 받는다. 확률론에서는 마코프 체인(Markov chains)으로 묶여있다고 한다. 확률은 독립적이다. 나의 공간과 시간이 관계된 바로 전 사건만이 나의 현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경계가 구조를 결정하고 구조가 맥락을 구성한다. 이 맥락은 위계적(hierarchial)이어서 특별한 순서를 가능케 한다. 위계적이어야 현재 상태가 바로 직전의 상태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가는 중요한 구성요소다.

아무 의미 없이 무조건 반사적으로 내뱉는 대화의 단어일지라도 사실은 바로 직전이나 직후에 등장하는 음절이나 단어에 영향을 받는다. 앞에 말한 단어에 따라 뒤에 이어져 올 단어가 선택된다. 요즘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음성인식 기술의 기초가 여기에 있다. 음성인식 AI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인간의 음성을 거의 90% 이상 기계가 인식하게 됐다. 유튜브 동영상에 실시간 자막이 따라붙는 정확성과 속도를 봐도 놀라울 지경이고 자동차에 내장된 내비게이터 음성 인식 능력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해 있다. 손가락으로 음소를 일일이 누르지 않고 '우리 집'이라고 말만 해도 내비게이터가 말을 알아듣는다. 단일 단어의 수준을 넘어 문장을 말해도 척척 알아듣는다.  바로 인간의 언어 학습 능력을 반도체에 심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맥락이 다음 맥락을 결정하고 있다는 비밀을 알았기에, 그래서 처리하는 정보량을 최소한으로 줄임으로써 차원의 저주를 벗어나 효율적으로 다음 작업을 완벽히 수행해 낼 수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AI의 빅데이터 학습이 점점 늘어나고 메타 러닝(Meta learning)이 깊어지면 인간만의 영역인 공감의 능력도 인간에 버금갈 수 있는 날이 곧 올 듯하다. 이미 AI는 소통의 한계를 넘어서 공감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는 공감이 메타 러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 러닝은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과거 사례가 공감의 바탕이 된다. 경험하지 못한 사례를 들어 공감을 표시하면 상대방이 금방 눈치챈다. 그렇다면 경험을 근거로 한 공감 차원에서는 AI가 개별 인간을 뛰어넘을 시간은 초읽기에 들어서 있다. AI는 너무도 쉽게 경험치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학습과 메타 러닝 시간을 늘려주면 된다. 오리무중 인간과 대화하는 것보다 예측이 가능한 AI와 대화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한 시대가 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소통과 공감이 있다. 따뜻한 손잡음이 있고 은근한 눈빛이 있다. 기계가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손잡음과 눈빛의 분위기가 공감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고 심지어 지금 바깥의 햇살이나 짙은 회색의 하늘에서 내리는 눈발의 흩날림조차 감정의 씨앗이 되고 있음을 기계는 모를 것이다. 그래서 만나야 한다. 사람은 만나서 손을 잡고 어깨를 안고 다독여주고 옆자리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함께 마시며 웃음과 울음을 같이 경험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공감이자 소통이다. 


그래서 옆자리를 항상 비워두자. 따뜻한 커피를 두 잔 들고 와서 앉을 수 있는 자리. 흰 눈 흩날리는 공원의 벤치면 어떻고 비 내리는 강변의 계단이면 어떠하리. 환경을 운치로 치환할 수 있다면, 비어있는 옆구리에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면, 소통과 공감은 이미 완결된 것이다. 누군가의 옆에 앉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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