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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14. 2022

정답을 찾기보단 해답을 찾아라

우리 사회는 정답을 찾는데 골몰해왔다. fast follower의 DNA에 내장되어 있는 유전자와 같다. 정답을 알아야 빨리빨리 따라가고 문제 해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fast follower에서 creative leader가 되면 문제의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따라만 갈 때는 창의적이지 않아도 됐지만 리더가 되고 나서는 더 이상 따라갈 대상이 없이 스스로 만들고 개척해 앞서가야 한다. 이 역치의 순간에서 배를 잘 갈아타야 한다. 그동안 타고 있던 배로 쭉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산이다. 따라가는 자와 앞서가는 자의 수단은 완전히 다르다. 수단이 다르면 생각하는 바탕도 바뀌어야 한다. follower의 틀을 완전히 벗어던지는 환골탈태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절대 leader의 위치를 유지할 수 없다.


"강을 건넜으면 배를 부숴버려라"


정답(正答 ; answer)은 어떤 문제에 대해 내놓는 옳은 답이다. 정답은 유일한 답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유일무이한 것이고 반드시 그것이어야만 한다. 정답이라고 정해진 것 이외에는 모두 틀린 것이 된다. 그래야 정답으로의 기능을 할 수 있다. 사실 정답은 상징이다. 없는데 만들어진 것이고 그렇다고 믿는 것이다. 상징이 곧 의미다. 사물(事物)에 사물성(事物性)이라는 상징이 부여되어야 비로소 사물이 존재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부여된 정답은 획일성을 갖는다. 획일화가 되면 가치판단이 단순해진다. 빨리빨리 따라가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밀어붙이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으면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 되고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표출된다. 돈을 많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구분 짓는 것이다. 똑같은 형태의 아파트에 사니 비교의 대상은 "너는 몇 평짜리 아파트니?"로 귀결되고 "자동차는 벤츠야?"로 넘어간다. 정답 추구 사회가 가져온 획일화의 치명적인 가치판단 쏠림현상이다. 같은 규모의 집이라도 마당이 있어 햇빛 속에 자라는 화초라도 가꿀 수 있고 눈이라도 내리면 빗자루를 들고 쓸 수 있으면 정답의 가치는 다양해질 수 있다. 아파트 크기가 삶의 가치가 아니고 마당에 쏟아지는 햇살과 비와 눈이 가치로 전환될 수 있다.


그래서 정답보다는 해답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해답(解答 ; solution)은 맞닥트린 문제나 현안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해답은 정답처럼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가 될 수 있다. 내가 찾은 해답이 정답일 수 도 있고 다른 사람이 찾은 해답이 정답이 될 수 도 있다. 해답은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보통은 자기가 찾은 해법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기에 자기 것이 맞다고 우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세상은 수학공식처럼 1+1 = 2가 아닌 경우가 부지기수다. 숫자로 보면 2가 되어야 하지만 끈적이는 물체나 액체로 놓고 보면 1+1은 다시 1이 되기도 한다. 물성이 다른 개체를 합쳐놓으면 계속 분화하여 헤아릴 수조차 없는 크기로 커지기도 한다. 상황에 맞는 해답이 제각각 존재하며 어떠한 해답으로 정답에 접근하더라도 맞는 해법이 된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정답 하나만을 추구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하고 다양하다. 무수히 많은 해답이 존재하고 있음을 눈치챈다면 세상일이 나에게 다시 다가올 수 있다. 나만의 시선으로, 나만의 해결방법으로, 나만의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주어진 정답을 따라가기보다는 내가 만들어가는 세상의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언제나 삶의 주도자는 '나'다. 당장 나만의 길을 가아한다. 움직여야 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만의 해답을 찾기 위해 움직이는 현상을 곧 산다고 표현한다. 그렇게 살아내고 그렇게 버텨내는 과정이 '산다'는 일이다. 이 해답은 인생의 그 어떤 황혼기, 그 어떤 날 받아 들 성적표다. 인생을 잘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인증서가 된다. 정답 맞히기에 쪼들려 살기보다는 여유 있는 해답을 찾아야 그나마 덜 힘든 삶이 될 터이다.


서산대사는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 눈 내린 들판을 걸을 때는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걸어가는 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라고 했다. 


해답을 찾아가는 일은 이렇게 나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올곧은 해답을 찾아 정진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삶에 나만의 해답이 있고 내 흔적을 뒤돌아 볼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음을 확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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