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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08. 2022

그럴 수 도 있지

"2001년부터 2011년까지 구글의 CEO로 재직했던 애릭 슈미트(Eric Schmidt)가 구글에 첫 출근하는 날,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책상  두 개 중 하나에 다른 직원이 이미 앉아서 근무하고 있었다. 슈미트는 그 직원을 내보지 않고 조용히 옆에 있는 다른 책상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CEO의 자세'를 언급할 때 종종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 에피소드를 언급하는 자기 개발서들의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음을 보게 된다. "미국이라는 자유분방한 나라니까 가능하지" "실리콘밸리의 기업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구글의 근무형태도 다르고 하다 보니 발생할 수 있는 일이지" 정도다. 기업문화와 이를 대하는 CEO의 태도를 차원이 다른 분위기라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해버리고 만다. 그저 부럽고 그저 존경스러운 정도라고 해야 하나?


만약에 국내 기업 중에 자기 사무실에 직원이 앉아서 근무하는 모습을 본 CEO가 있었다면, 아마 십중팔구 난리가 났을 거다. "자네 누구인가?"를 묻기도 전에 비서실장을 호출하여 당장 내쫓았을 것이다. 아니 국내 CEO들은 별도의 층에 마련된 사무실을 사용할 테니 아예 직원들은 들어가지도 못해, 벌어질 수 도 없는 상황임에 틀림없다.


보통 기업, 보통 CEO가 해낼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니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깔려 있어야 한다. 분위기는 "어떤 대상이나 주변에서 풍겨 나오는 느낌"이다. 풍토이자 기반이다. 그 공간에 가면 그 공간 특유의 냄새가 스멀스멀 나는 것이 분위기다. 그것이 기업문화다. 


말할 필요도 없이 기업문화는 그 기업의 직원들이 만들어 온 전통이 배어있다. 역사가 깔려있고 전통이 숨어있다. 이 분위기가 해가 갈수록 쌓이고 전해져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다. 국내 대기업들의 기업문화와 직원들의 행동을 보면 이 분위기가 각각 다름을 눈치챌 수 있다. 삼성그룹 직원들이 스마트하고 깍쟁이 스타일의 분위기를 풍긴다면 현대그룹 직원들은 특유의 건설, 제조업의 특성이 내재된 거친 야성의 모습을 보인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밖에서 해당 그룹들을 볼 때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에릭 슈미트는 구글 직원들을 "전문성과 창의력을 가진 사람(smart creative)"이라고 명명했다. 이들은 보편적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특별한 방법으로 목표에 도전할 자세를 갖추고 현상유지 같은 방식은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창의적인 호기심에 가득한 사람들은 어디서나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보고 그것을 해결할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사무실 책상을 선점하고 앉은 직원을 내보내지 않고 그저 옆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하는 자세는 이렇게 직원들을 배려하는 기본 생각이 깔려있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이는 바로 '그럴 수 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유연성이다. 


우리 사회에선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한다는 틀을 만들어 놓고 있다.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다른 행동을 하면 배신이 되고 변절자가 되고 줏대 없는 놈이 된다. '명분'이 우선하는 경우가 더 많다 보니 '실리'를 이긴다. 유연성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런 틀 속에서는 창의성과 유연성이 나오기 힘들다.

대표적인 사례 중에 만우절 이벤트들이 있다. 가짜 뉴스들이 판을 치고 있는 요즘에는 시들해졌고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2000년부터 해오던 구글의 만우절 이벤트도 2020년부터 중단되고 있지만 선마이크로시스템즈사 직원들이 펼치는 만우절 장난은 상상을 초월했었다.


에릭 슈미트가 구글로 오기 전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개발팀장이었을 1986년 만우절에는 직원들이 슈미트의 사무실에 폭스바겐 자동차를 가져다 놓았고 슈미트는 사무실 안에 있는 비틀 자동차 안에서 회의를 하기도 했다. 이 회사 직원들은 1991년 만우절에는 더 기발한 생각을 하는데 1991년 당시 웨인 로징 썬 연구소장의 사무실이 통째로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파크에 있는 스테인하트 아쿠아리움 수족관 속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사무실에 있던 책상, 컴퓨터는 물론 책상 위에 있던 가족사진까지 상어와 수백 마리 연어 떼가 헤엄치는 수족관에 잠긴 것이다. 이 기상천외한 이벤트의 당사자는 또 기꺼이 산소통을 매고 수족관 안으로 들어가 자기 책상에 앉는다. 


이런 이벤트가 국내 기업에서 발생했다면? 글쎄 이런 일을 벌이겠다고 마음먹는 직원들도 없겠지만 이런 일을  했다고 치더라도 CEO의 다음 행동은 불을 보듯 뻔할 듯하다. 미국에서 벌어지면 '그럴 수 도 있지'라고 받아들여지고 한국에서 벌어지면 '어째 그런 일이' 되어 버린다. 


엉뚱하지만 건전한 상상과 시도는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기업, 이런 이벤트를 받아들이고 용인하는 CEO의 자세, 그 융합이 만들어내는 기업문화는 타 기업들이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으로 연결되어 세계를 제패한다. 그저 부러움의 눈으로 "재들은 정말 잘하고 있네" 정도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도 기발한 상상력이 창의성으로 드러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쉽지 않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언제까지 부러워해야만 하나?  관념의 틀. 명분의 틀, 위계의 틀을 과감히 벗어던질 수 있는 그런 시도들을 권장하고 수용하는 유연성을 발휘해보자. '그럴 수 도 있음'을 인정하고 나면 못 받아들일 헤게모니는 없다. 그게 융합이고 통합이고 화합일 것이다. 그래야 개인도 기업도 사회도 국가도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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