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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21. 2020

아파봐야 건강함에 감사한다

우리는 갖고 있는 것은 쉽게 잊습니다. 그리고 갖지 못한 것을 추구합니다. 당연한 인간의 욕구입니다. 갖지 못한 것을 갖고자 하니 욕심이 생깁니다. 조금 더, 조금 더 하다 보니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 놓치게 되고 잊게 됩니다.


심지어 나에게 달려있는 이 팔다리가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 조차를 잊고 있습니다. 손가락 끝을 종이에 베고 밴드를 붙여놓기만 해도 얼마나 불편한지 알게 됩니다. 세수하기도 거추장스럽고 옷을 입고 단추를 채우기도 어색해집니다. 이렇게 다쳐봐야 온전했던 손가락의 고마움을 깨닫게 됩니다. 손가락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아침에 손으로 세수하고 양치질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해지는지요.

다리는 또 어떻고요? 

미끄러운 빙판길을 조심스럽게 걷는다고 하지만 삐끗하여 접질리기라도 하면 발목이 시끈 시끈 하고 제대로 발걸음 옮기기도 쉽지 않습니다. 계단을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욱 힘듭니다. 온전히 걷고 뛴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한 일이었음을 새삼 알게 됩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

왜 온전할 땐 좋은 줄 모르고 그게 행복인 줄 모를까요?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합니다. 이미 그렇게 존재하고, 그렇게 기능을 하기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생존의 기본 기작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살다"의 기본 전제조건은 생존입니다. 살아남으려면 위험 요소에 먼저 대응을 해야 하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미 온전하다는 것은 사는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으므로, 생존의 변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브레인은 자연스레 온전함을 무시합니다. 그래야 더 위험한 상황에 주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 역사 46억 년 생명의 역사에서 생명의 대폭발이 일어났던 5억 5천만 년 전 선캄브리아 기를 시작으로 에너지 효율의 극대화를 위해 생명이 생명을 잡아먹는 순환의 사이클에 들어선 이래 DNA에 내장된 절대적 망각(Oblivion)의 사슬입니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최적의 적응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가장 쉬운 것은 걷고 뛰고 움직이는 몸 운동입니다. 이미 46억 년을 연습해온 장대한 시간의 누적을 통했으니 어느 존재보다도 월등히 잘 해낼 수 있습니다. AI 컴퓨터 알고리즘 로봇이 제일 못 하는 것 중에 하나가 걷고 뛰는 일입니다. 당연합니다. AI 로봇은 태어난 지 이제 겨우 100여 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걷고 뛰는 것이 AI 로봇에게는 가장 중요한 위험요소입니다. 대신 AI 로봇은 계산하고 논리를 하는 데 있어서는 인간을 뛰어넘었습니다. 역시 당연합니다. 인간 브레인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대한 외부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니 더 정확할 수밖에 없습니다. 머신러닝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기능까지 탑재했으니, 400cc밖에 안 되는 인간의 두뇌를 뛰어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이젠 인간의 직업으로 몸을 쓰는 일이 각광받는 시대가 됩니다. AI 로봇이 제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하더라도 인간만큼 정교하게 움직이지는 못할 테니까요. 그렇다고 몸을 쓴다고, 힘을 쓰는 것과 착각하면 안 됩니다. 몸에 내장되어 있는 유연한 근육을 활용해 해낼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몸을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 일상에 감사해야 합니다. 아파 본 사람만이 건강한 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지금 마시고 있는 차 한잔을 음미할 수 있고 천정을 타고 흐르는 벤틸레이션 공기의 흐름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축복을 누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맞이한 새벽의 태양과 저 구름이 어제, 오늘을 살고 싶어 한 환자가 보고 싶어 한 소원이었음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만큼 우리는 소중한 시간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그대가 옆에 계심 또한 소중한 감사임은 자명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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