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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21. 2020

추위에 대한 추억의 재생

오늘 아침 기온은 영하 9도를 보이더니 지금은 조금 올라 영하 5도입니다. 출근길이 제법 춥습니다. 지난주, 눈이 아닌 비가 내리는 등 겨울 같지 않은 겨울 날씨 때문에 오늘은 상대적 체감온도가 낮아서 그런 탓도 있습니다.


사실 겨울은 추워야 합니다. 사계절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모두 발휘해야 계절로써의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근래 영하를 간신히 밑도는 기온은 겨울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가야 제대로 겨울이라 칭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빙어축제와 같은 강원도 축제들이 어름 두께가 얕아 치러지지 못하고 연기되기도 했습니다.


기온 변화는 인간의 행동 양태까지도 바꾸고 있습니다. 아니 인간은 온도의 변동 폭에 당연히 영향받을 수밖에 없고 적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를 변화시키기에는 인간은 역부족입니다. 그럼에도 온도를 상향시키는데 인간이 일조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구의 대기 온도를 올리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화석연료로부터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석탄으로 석유로 암석으로 저장되어 있던 이산화탄소를 마구 대기로 풀어놓고 있는 장본인이 인간입니다. 자연도 어쩌지 못하는 singularity가 오기 전에 인간의 지혜를 모아야 할 이유입니다.


겨울의 추위를 이야기하려면 과거를 소환해야 합니다. 어려서 정말 추웠던 기억들이 김장김치에 무 박히듯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니어서 기억 속에 생생한 그런 추위가 말입니다. 겨울 논에 물을 대고 얼려서 만든 스케이트장에서 썰매를 타던 기억, 스케이트 대신 나무에 철사를 대고 타던 앉은뱅이 썰매와 나무토막으로 높이를 한층 높여 발을 올리고 서서 타는 외발이 썰매를 타던 기억도 있습니다. 무릎까지 빠지는 설경의 태백산 등선에서 돗자리를 깔고 미끄럼 타며 내려오던 산행과 시립도서관으로 공부하러 간다고 나온 아침이 영하 23도나 되어 한참을 가다 다시 집으로 되돌아 갔던 추위도 있습니다. 추위의 기억이 미소를 짓게 하는 추억으로 되살아 납니다. 추워야 경험해 볼 수 있는 그런 풍경들입니다. 어쩌면 내 생에 다시는 경험해 보지 못할 추억의 페이지로만 남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꼰대의 전형이라는 "Latte is a horse!!(나 때는 말이야)"를 주절대고 있습니다. 추억이 꼰대의 넋두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말입니다. 추억은 아름다움으로 미화되고 재해석되는 현재의 표상이 되어야 하는데 이젠 추억을 이야기하면 꼰대의 고리타분함으로 비칩니다. 과거가 현재와 단절되어 벌어지는 현상 같습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풍광을 이야기하니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겁니다.


추억도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추억도 여유가 있어야 소환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나 상황에 여유가 있다는 것은 이미 발생할 모든 일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상황 전개를 예측하지 못하면 절대 여유로운 자세를 견지할 수 없습니다. 상황을 바로 볼 수 있는 매의 시선과 오랜 경륜이 집약되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면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나옵니다. 여유라 함은 서두르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 순서를 알고 있기에 조급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해진 과정을 따라가고 방향이 잘못되어 간다 싶으면 조정을 하면 됩니다. 여유는 백과사전 같은 지식의 보고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종합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추위에 대한 기억의 소환도 마음의 여유가 만들어낸 상상의 공간입니다. 무척이나 추웠던 기억의 소환으로 잠시 추위를 잊었나요? 예전에 비하면 요즘 기온은 추위도 아니죠? 지금은 춥지 않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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