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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22. 2020

우연히 듣게 된 추억의 노래

아침 전철에 마침 빈 좌석이 있어 날름 앉아 휴대폰 안의 이메일을 체크합니다. 당장 회신을 하거나 할 메일은 없습니다. 유튜브로 들어가 강의 동영상 검색을 합니다. 화면에 추천된 동영상들이 줄줄이 흐르는 틈새로 눈이 번쩍 뜨이는 영상이 보입니다. ELO(Electric Light Orchestra)의 "Last Train to London"이라는 뮤직비디오입니다. 대학시절 많이 듣던 곡입니다. ELO가 부른 곡 중에는 불후의 명곡인 'Midnight Blue' 'Don't Bring Me Down' 등이 있습니다. 제목만 보면 우리 뽕짝인 "대전발 0시 50분 ~~"하는 노래와 비슷하지요. '런던행 마지막 기차'입니다.


오늘 아침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에 눈이 번쩍 뜨인 이유는 이 노래에 사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시절 학교 방송국에 있었습니다. 학교 방송국 생활은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해오던 거라 대학가서도 학교 방송국에 지원했습니다. 학교 방송국 1학년 수습생활을 마치고 2학년부터는 보도국 PD이지만 아침 등교시간 1시간 정도를 음악을 틀어주는 판돌이 역할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시절 즐겨 듣던 LP판의 음악들이 제가 듣는 노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추억의 소환이라고나 할까요?

근래에 영화로 인하여 추억을 소환했던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만 해도 대학시절에 즐겨 듣던 곡이었습니다. 노래가 좋기도 했지만 곡의 길이가 6분 정도 되기에 LP판 걸어놓고 딴짓하기에 좋기도 했습니다. 대학시절의 퀸 노래 추억 때문에 2006년 스위스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에는 프레드 머큐리의 동상이 있는 레만호 옆의 몽트뢰까지 가기도 했었습니다.


이 'Last Train to London'은 방송을 하던 어느 날 아침에 틀었던 곡 중 하나였습니다. 아침 방송이 끝나고 선배들과 디브리핑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1년 선배 되시는 분께서 아침 선곡표를 보자고 하십니다. ELO곡은 어떻게 선곡한 것인지 묻습니다. "곡의 풍도 밝고 해서 아침 분위기를 경쾌하게 하기 위해 골랐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선배가 되묻습니다. "그 곡의 가사를 읽어봤냐?" 머뭇거립니다. 곡의 선율만 듣고 선곡했지 가사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읽어보지도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선배가 지적합니다. 이 곡은 아침 노래로 선곡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노래 가사를 들어보면 어디인지는 모르나 제목이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런던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타고 헤어지는 연인과의 심정을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팝송을 들을 때는 거의 99% 정도, 가사보다는 음률이 듣는 기준이 됩니다. 하지만 저는 ELO곡에 대한 지적을 받은 이후로 음악을 들을 때 항상 가사도 신경 써서 듣게 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예전 LP 시절에는 재킷 안에 LP에 수록된 곡의 가사가 적혀있는 종이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선곡할 때마다 노래를 들어보고 가사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예전에 해적판(?)이 많았습니다. 김민기 양희은 노래같이 금지된 LP판을 몰래 찍어서 청계천 낙원상가 한 귀퉁이에서 팔기도 했었는데 팝송 해적판도 꽤 많았습니다. 가사를 들어도 뭔 뜻인지 이해를 못합니다.ㅠㅠ 대강 듣고 그런가 보다 판단하고 선곡 목록에 넣을 것인지 결정합니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듣고 싶은 곡들의 가사를 모두 보고 들을 수 있고 심지어 공연 영상까지도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음악 DJ에게 있어서도 상전벽해의 시절을 지나온 것입니다.


ELO의 노래를 다시 들으니 기억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오래된 기억의 트라우마까지 소환된 아침입니다. LP판만 틀어주는 음악 카페에라도 가서 추억의 노래들을 신청해 들어봐야겠습니다. 홍대 주차장 골목에 있던 '별이 빛나는 밤에', 영등포구청 근처의 '마이웨이', 경향신문 앞에 있는 LP 뮤직카페 '음악과 사람들'도 가끔 가던 곳입니다만 최근에는 여러 곳에 LP 음악 전문 카페들이 생긴 모양입니다. 그래도 저는 아직 DJ 아저씨가 부스에 앉아 끈적이는 멘트를 날리는 '마이웨이'가 더 친근합니다.  조만간 "LP판 음악 들으러 가자"라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겠습니다.


last train to London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Up4WjdabA2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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