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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22. 2022

모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2022년도 오늘을 포함해 딱 열흘 남았습니다. 대충 한 해 정리들은 하고 계신가요? 코로나19의 암흑기를 건너오느라 심신이 약해질 대로 약해졌을 텐데 기력회복을 위한 공진단이라도 하나 챙겨드셔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온갖 연구소에서 내놓는 내년도 경제 전망은 암울하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코로나 3년의 시간을 버텨왔는데 까짓 1년 정도야 더 못 버티겠습니까?


그나마 올해 하반기 들어서는 코로나로 인한 여러 규제들이 완화되면서 해외여행에도 눈길을 주게 되고 특히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모임을 할 수 있게 되어 숨은 쉴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덕분에 11월 말부터 3년 동안 못 만났던 모임들이 줄줄이 되살아났습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간절하고 절실했다는 것을 코로나 팬데믹이 일깨워주었습니다. 


저 만해도 12월 들어 벌써 10여 건이 넘는 송년모임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점심, 저녁식사 약속으로 잡혀있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주말과 이어지는 다음 주 한 주는 대부분 휴가들을 소진하는 기간들이라 송년회도 대충 이번주로 마무리되는 시간에 접어든 듯합니다.


어제저녁엔 명동에 있는 호텔에서 같은 83학번 대학동문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 모임 역시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입학할 때 계열모집을 한 관계로 경상계열로 들어온 동기들이 모이는 모임입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 동문들이 모이게 됩니다.


보통 같은 학과를 졸업한 동기들이 모이면 대부분 직업군들이 비슷비슷하게 됩니다. 당연합니다. 직업에 대한 같은 생각으로 모인 사람들일 테니까요. 그래서 사회에 나오면 같은 학과 출신들의 우애와 유대관계는 끈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학연을 없애야 사회가 바로 선다"라고 하지만 사실 웃기는 얘기입니다.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 바꿉니다. 학연은 혈연과 지연과 함께 3대 인연의 깊은 끈입니다. 이 세 가지 끈 중에 하나라도 놓으면  놓는 횟수만큼 사회생활이 어려워집니다. 


사회는 관계로 만들어지고 이 관계는 바로 학연과 지연과 혈연의 고리 속에서 더욱 튼튼해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판의 하수들이 정략적으로, 당파적으로 지역색을 부정적으로 부추기는 통에 악의적인 듯 인식되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월드컵에서 16강을 염원하며 밤늦게까지 응원했던 것 자체가 국가민족주의로 편가름을 하는 행위임에도 누구 하나 문제 삼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응원하지 않는 사람은 매국노이자 몰상식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하지만 이 학연, 지연, 혈연으로 인한 관계의 미학은 '정도의 수준'을 지킬 때 그 미덕을 발휘합니다. 지나치지도 모자람도 없는 중용의 경계를 지켜야 합니다. 말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겨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기편 가르기가 더 좋고 팔은 안으로 굽히기가 더 쉽습니다. 그러다 보면 무리수가 따릅니다. 경계를 경계해야 할 최대의 위기상황이 됩니다. 한 발만 잘못 디뎌도 온갖 비난의 목표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사례들은 너무도 많이 봐왔습니다.


학연으로 모인 어제의 모임은 다른 직업군들의 동문들이 모이게 됨으로 weak tie 관계인 사람들이 여러 명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것은 아니고 얼굴은 아는 정도의 사이, 그럼에도 서먹서먹하지는 않고 말 트고 소주잔 건배할 수 있는 정도의 그런 관계의 동기들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weak tie 관계가 최신 정보 습득이나 창의적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하는데 힘을 발휘합니다. 서로 다른 영역에 있지만 살짝 관심과 친밀감 정도를 가지고 있기에 다른 관점과 다른 시각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서로 상대방에게 일부러 어떤 조언을 하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고 그저 자기가 사는 이야기나 비즈니스 이야기를 해도 그 안에 보석처럼 숨어있는 정보들이 알알이 박혀 있습니다. 이것은 눈치채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정보이자 지혜입니다.


같은 업종이나 같은 공간에서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 간에는 유사한 영역에 있는 관계로 비슷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strong tie 관계에 있으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 때는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입니다.


세상에 나와 별 상관없는 관계는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그 관계를 매듭짓거나 유지할 것인지는 나의 판단능력과 참여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 ;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 지금 있는 그곳이 진리의 자리다"라고 했습니다. 연말에 모임 하나하나가 사실 모두 소중한 자리였음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그 자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꺼이 불러준 친구나 동기나 모임의 운영진들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나의 사회적 공간의 경계가 넓혀지고 '던바의 수' 안에 들어온 가까운 사람과의 유대를 더욱 돈독히 다져가는 귀중한 시간을 주기 때문입니다. 


술 한잔 기울이던 손길을 휴대폰 문자와 카톡방의 안부로 전환해 감사를 표합니다. 사소한 오지랖일 수 있으나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를 만드는 윤활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문자가 쌓이고 사진이 쌓이고 동영상이 축적되면 추억으로 전환되어 시간의 틈새를 메워줍니다. 나이 들어 잊히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가끔 휴대폰을 뒤적이다 미소 짓게 될 것입니다. 모임의 추억은 그렇게 쌓고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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