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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23. 2022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 하나쯤 있으신가요?

Merry Christmas입니다. 내일이면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나이가 60을 향해 가면서 크리스마스에 대한 감흥이 점점 사라져 가는 느낌입니다. 기대감이 사라져 가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선물을 받던 시절을 지나 선물을 줘야 하는 시기로 전환된 이후 사라진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지나쳐온 10대 때의 크리스마스를 되돌아보면 1년 중 그래도 몇 안 되는 기다리는 날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와 인연이 있는 집안도 아니었습니다만 색종이를 오려 붙여서 마당에 있는 소나무에 크리스마스트리도 만들며 한껏 기대감을 부풀렸던 소년시절이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추웠던 한겨울 밤의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TV 시청은 온통 서양 서커스 장면을 보여주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공중그네 타고 코끼리 쇼를 보여주던 연말 서커스 모습은 언제부터인가 TV화면에서 사라졌습니다. TV 채널이라고는 KBS와 MBC밖에 없던 그 시절에는 주말 명화극장을 통해서나 외화를 접했는데 연말이면 빡빡머리 율 브린너(Yul Brynner)와 데보라 커(Deborah Kerr)가 주연한 영화 '왕과 나(The King and I)'도 어김없이 브라운관에 한국인 목소리로 등장했습니다. 오락거리 없던 시절, TV에서 하는 외국영화는 가뭄의 단비처럼 주말을 기다려야 볼 수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시즌부터는 거의 매일 TV에서 외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연말 TV 방영 영화의 대명사인 '나 홀로 집에'는 1991년에 처음 개봉되었으니 저의 20대 후반에 들어서입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고등학생 시절에는 친구 놈에게 납치(?)되어 끌려갔던 개신교회를 다니며 중고등부 크리스마스 행사를 준비하기도 했고 원주지역 전체 교회 성가경연대회 중창부문에도 참가해서 1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교회친구들과 새벽송을 돌며 삥(?)을 뜯기도 했습니다. 설날이면 복조리 파는 사람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복조리를 담장 너머 던져놓고 다음날 복조리 값 회수하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축복의 찬송가를 불러주는 대문 앞이 대부분 친구네 집 앞입니다. 친구 부모님들이 잠옷 차람으로 나오셔서 고생한다며 과자며 용돈 정도를 쥐어주곤 했습니다. 그 맛에 추운 겨울 새벽, 입과 발이 얼얼함에도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모인 돈은 헌금하는 게 아니라 영화관으로 들어가거나 모여서 노는 유흥비로 쓰였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아파트로 주거행태가 바뀐 탓인지 이런 새벽송 돌기는 안 하는 듯합니다. 하긴 하나요?


지금도 당시 고등부를 함께 했던 교회친구들이 카톡방에 모여 수다를 떠는 공간이 있습니다. 대부분 아직도 신앙을 유지하여 목사가 되어 목회를 주도하는 친구도 있고 개종하여 신부님이 된 친구도 있습니다. 저만 유일하게 대학 들어가면서 교회하고의 인연을 놓고 있습니다. 글쎄요 다시 교회로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사실 저희 집안에서는 둘째 누님이 철저한 신앙의 권사님이십니다. 어머니께서도 교회에 다닌 적이 없지만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모든 장례 절차를 누님의 권유로 교회식으로 치르고 하나님의 품으로 가게 했습니다.

그렇게 끊어질 듯 말 듯 크리스마스는 저의 삶의 한 귀퉁이에 화롯불 불씨처럼 살아있는 듯합니다. 집에 아이들 어릴 때에는 아파트 거실 창문에 오색 등을 걸고 크리스마스 트리에 천사와 별을 달았습니다. 캐럴이 오르골 소리로 은은히 울려 나오는 오색등이 점등되어 깜박이면 좋아서 거실을 뛰던 아이들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모습은 아이들이 중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저희 집 거실에서 사라진 것 같습니다. 공부라는 짐이 크리스마스의 감흥까지 앗아간 듯합니다. 지금도 베란다 창고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품들이 있습니다. 다시 꺼내서 거실을 장식해볼까도 생각하다 접었습니다. 그만큼 감정이 메말라진 듯 하고 장식을 해야 할 필요성조차 사라진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를 기회로 무언가 집안 분위기를 바꾸고 해야 할 의무감이 사라진 듯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취업을 하고 대학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거실 장식은 안 하더라도 와인을 마시고 케이크정도는 같이 먹는 정도로 크리스마스가 바뀌었습니다.


현재보다는 과거를 이야기하는 크리스마스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반증일 겁니다. 지난 기억들이 모여 현재로 다시 재구성되겠지만 그 추억의 시간들이 소환되어 등장할 때 은근한 미소도 같이 떠오릅니다. 나름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내 삶의 단계 단계별로 지나쳐 온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구세군 빨간 냄비에 천 원짜리 지폐를 넣다가 냄비 입구에 벙어리장갑이 걸려서 손을 못 빼고 뒤돌아 울던 아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혹독하게 추운 이 아침. 추위에 떠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추운 겨울을 잘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사랑입니다. 고맙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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