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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16. 2020

生老病死

옛말에 '병과 좋은 일은 널리 알려라'라고 했습니다. 생로병사의 길을 걷는 거야 세상 만물 똑같은 일이니 굳이 우열이나 앞뒤를 가릴 것이 없습니다. 그저 그대로 나타나고 사라지는대로 보면 됩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많고 잊고 있을 때가 더 많습니다. 의식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보인다는 것입니다.


생로병사 중 가장 좋은 일은 '생'일 것입니다. 물론 '난다'는 것 자체를 '苦'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난 이후'의 과정을 시작부터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우주의 공간 중에 생명으로 태어난 것 자체는 축복할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머지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은 부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의 유한함을 표현하는데 가장 극단의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결국 이 극단이 인간 생존 동안 겪게 되는 최고의 화두였기 때문일 겁니다. 이 '생로병사'의 4단계에서 유일하게 그나마 조정하고 조율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病'입니다. 병듦을 아예 차단할 수는 없으나 지연시키고 최소화할 수는 있습니다. 바로 운동을 하여 신체적 능력을 향상하는 방법입니다. 또한 정신적 건강을 위해 명상을 하고 긍정적 사고의 전환이라는 훈련을 통해 스트레스를 최소화시키는 방법이 쓰입니다. 가볍고 적당한 스트레스조차 오히려 건강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호르메시스(Hormesis)입니다. 근육에 스트레스를 주는 운동이 대표적 호르메시스이지만 단식이나 금식과 같은 방법도 호르메시스입니다. 식사는 생존의 필수요건이지만 배고픔을 느낀 신체의 여러 방어 기제를 활성화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병'은 널리 알리라는 것입니다. '병'에 대한 생각을 역으로 생각하여 호르메시스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널리 알리면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단 지성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 제시되기도 하고 그 널리 알리는 고백을 통해 정신적으로도 안정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알림을 통해 공유와 공감을 형성함으로써 보호막을 칠 수 있다는 위안을 갖기 때문입니다. '병'을 알리면 호르메시스가 됩니다. 코로나 19의 국제적 대응도 대표적인 호르메시스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위안이 될 수 있고 기댈 언덕으로 존재한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역할도 없습니다. 항상 행복하면 그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산전수전 다 지나는 동안 서로 비교가 되어야 '아 이것이 행복이었구나' 알게 되고 그만큼 행복이 소중해지는 것입니다. 손가락을 다쳐봐야 세수하고 양치하고 숟가락 드는 행위조차 손가락으로부터 시작됨을 알게 되고 다리를 다쳐봐야 걷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되고 계단을 걸어 오르는 것이 얼마나 경이적인지 알게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작은 시련과 고민은 오히려 경쟁력을 키우는 자극제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려운 이야기이고 입에 발린 소리일 수 있으나 그렇게 최면을 걸고 그러하다 이해하고 그러하다 실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편안한' 것을 느끼고 알게 됩니다.


생로병사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정점에 '편안함'이 보이면 도를 통했다, 하산해도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동행할 도반이 있으니 그대는 결코 외로워하지 않아도 되고 슬퍼하지 않아도 됩니다. 기지개 한번 크게 켜시고 큰 웃음 한 번으로 일상을 시작하면 됩니다. 행복과 즐거움은 바로 곁에 있습니다. 그저 하면 됩니다. 바로 시작하시죠. 국회의원들도 다시 뽑아 임무를 재배분했으니 최근에 닥친 국면을 더욱 새롭게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내 편 네 편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동행인입니다. 생로병사를 함께 안고 가는 운명이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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