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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14. 2020

투표는 선택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라일락꽃이 만개했습니다. 집을 나서 전철역까지 5분여를 동네 골목길을 따라 걷게 되는데 한 빌라의 담장을 넘어 향기가 전해옵니다. 저희 동네 라일락은 연보랏빛이더군요. 그런데 전철에서 내려 회사로 들어오는 한켠에도 라일락이 향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있는 라일락은 흰꽃입니다. 꽃의 색깔은 다른데 향기는 똑같습니다. 향기에도 색처럼 종류가 있겠지만 같은 종인 경우는 같은 향기 분자를 보유하고 있나 봅니다.


가로수의 연초록이 더욱 짙어집니다. 자연의 색깔을 더욱 초록 지게 만듭니다. 연초록의 잎은 그늘을 만들 만큼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봄을 알리던 꽃들의 향연은 초록의 색으로 교체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봄의 성숙을 알리는 철쭉이며 배꽃이 차지하는 시기입니다. 흰색의 향연을 펼치던 벚꽃잎도 대지로 내려앉듯이 그렇게 제 역할을 다한 것들은 뒤켠으로 가고 새로운 것들에 길을 내줍니다. 또 열심히 숙성되고 짙어지면 또 다른 새로운 것들에 그 닦아온 길들을 미련 없이 양보해 줄 겁니다. 물러나지 않아도, 물러서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물러나게 됩니다. 욕심을 부린다고 한 시간, 하루를 더 버티기 힘듭니다. 그저 자연의 시간이 부르면 순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자연은 생물과 광물의 공진화 현상입니다. 에너지를 흡수하여 살아움직인다고 하는 생물이, 조합해 내고 운반수단으로 쓰는 것이 모두 칼슘, 나트륨, 철, 산소, 이산화탄소, 탄소, 인입니다. 이 모든 광물은 자연 속에 그대로 존재합니다. 바로 돌멩이에, 저 보이는 산에, 그리고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건물조차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콘크리트입니다. 콘크리트의 주원료인 석회석은 바로 캄브리아기에 번성하던 갑각류의 껍질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한치도 거스를 수 없는 증거들입니다. 세상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고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하나로 공존하고 공진화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동안 상상 속에 갇혀 인본 우선주의에 빠져 있었을 뿐입니다.


자연에서는 인간이 절대 우위에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동급입니다. 인간만이 에너지를 제일 많이 소모하는 비효율적 존재일 뿐입니다. 싹을 띄울 조건이 되지 않으면 단단한 껍질에 싸여 수천 년을 기다리는 은근과 끈기를 가진 식물도 있습니다. 열량 공급이 부족하다 싶으면 동면하는 동물도 있습니다. 항상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도록 지혜를 발달시킨 인간이 그 덕분에 현존 지구의 지배자가 되긴 했지만 그 지구를 가장 빨리 망가트리는 원인 제공자가 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과 공진화하는 인간세가 되는 길만이 서로 공존하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비바람에 씻겨간 선선한 바람을 느끼고 촉촉이 젖은 땅의 말랑말랑함을 발끝으로 전해 들으며

물기를 줄기로 끌어올려 이산화탄소와 에너지를 합성해내는 나무들의 위대함에 감사할 줄 알면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경구를 성경 속에 있는 낡은 문자로 남겨놓을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 실천하면 됩니다. 자연의 일부로 이 순간 깨어있음에 감사합니다.

내일 투표에서 내가 선택한 누군가가 이 자연의 공진화를 인지하고 서로 더불어 잘 살아내기 위해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양분법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회색지대도 있음을 눈치채고 다양성이 공진화하는 그런 사회가 되도록 힘써 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서로 비방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으며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양보하는 성숙된 모습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투표가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선택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선택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공진화하는 사회가 되어 코로나의 위기도 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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